▶ 생각하는 삶
▶ 여주영<본보 뉴욕지사 편집위원>
창조주가 인간에게 준 귀중한 선물인 자연은 인간생활을 풍요와 행복으로 넘치게 해준다. 땅 위에서, 땅 속에서, 물 속에서 생성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건전한 정신, 건강한 육체를 보전, 유지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모든 자연초목과 과일, 곡물들은 계절의 순환과정 없이는 건전한 성장을 할 수 없다. 계절은 기압 차, 온도 차, 색의 변화를 통하여 삼라만상의 성장과정을 조절시킨다.
자연의 계절적 변화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에게 생의 동기, 사고, 행동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싹이 트는 봄철이면 생의 의욕과 야심을 고취시키고, 싱싱한 여름철에는 푸른 희망과 나래를 주어 피서를 찾게 하고 추수하는 가을이 오면 능금과 포도가 익어가는 풍성한 성숙도에서 관용과 풍요를 제공한다.
특히 가을은 짙푸른 녹음을 만산홍엽으로 물들여 가면서 형형색색의 단풍을 통하여 가을의 센티멘탈과 색의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그 단풍은 색깔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바라다보는 인간에게 위세를 부리다가는 결국 힘없이 떨어지며 장송곡 없는 고별을 하고 만다.
가을은 풍성함과 사랑, 낭만의 상징이라고도 하지만 한편으론 남모를 허전함과 울적함, 그리고 서글픔을 안겨주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 가을은 이런 계절적 감각을 맛볼 수 없을 정도로 분위기가 온통 불안과 공포 속에 어둡고 침울하다.
산과 들에 과일이 익었는지, 단풍이 물들었는지 가을에 대한 감각조차 희미하다. 하늘은 푸르건만 테러가 할퀴고 간 휴유증과 탄저병, 전쟁으로 인한 공포감 때문에 뉴요커들의 마음은 단풍색이 아닌 잿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비즈니스맨들은 지금쯤 한창 대목을 바라보고 몸과 마음이 분주하고 산천초목도 다가올 겨울 채비를 하느라 쉴틈 없이 바쁠 텐데 오히려 이 고비를 어떻게 넘길까 한숨으로 얼룩진다.
어떤 한인은 요즘같이 아름다운 단풍을 가리켜 하나같이 ‘제물로 바쳐진 테러사건의 희생자들의 넋이요, 혼인것 같다’고 아픔을 표현한다. 곱게 물든 잎사귀가 아름다움 보다는 비애와 쓸쓸함으로 비쳐지더라는 것이다.
가을을 맞은 사람들의 마음은 뚫려있고 고통과 상처, 불안으로 꽉 차 있다. 희망의 상징이자 뉴요커들의 혼이나 마찬가지였던 트윈타워의 붕괴는 심리적 공황과 더불어 보복, 테러의 악순환을 가져오면서 풍요의 가을을 여지없이 앗아갔다. 자연은 이런 인간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 소리 없이 순환되고 변화하고 있다.
자연의 원칙과 철칙 앞에 역사도, 문화도, 종교도, 철학도 숨소리를 죽이게 되는 것은 희로애락으로 점철된 이 세상에 한 번 왔다 돌아가는 인간의 숙명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내일을 알 수 없는 혼탁한 이 시대에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국가에 대한 세금납부와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다.
상처와 불안으로 얼룩진 이 가을, 유난히 머리에 맴돌고 있는 것은 세상의 거부 록펠러의 주검 앞에 던져진 어느 성직자의 조사 한 구절, ‘Nobody dies alone, Nobody lives alone’.
권력이 있는 사람이건, 명예가 있는 사람이건 누구나 이 세상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리고 모두 다 떠나게 되어 있다. 단지 앞에 가느냐, 뒤에 가느냐가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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