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 카운티 하우징(County Housing)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알렉산드리아 벨뷰에 있는 콘도로 입주하라는 통지였다. 기다리던 소식이긴 했지만, 막상 결정이 나니 왠지 잘못된 것 같기도 하고 두려움이 앞섰다. 세상은 코로나로 시간이 멈춘 듯 고요했고, 북적이던 거리에는 발자국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그리움은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내가 갈 곳은 노인 아파트였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낯선 공간에서 여생을 보내야 한다니 마음이 무거웠다. 정든 집을 떠날 생각에 눈물이 흘렀다. 집안 곳곳에는 가족의 냄새와 익숙한 목소리, 작은 습관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언젠가 누군가 돌아올 것 같은 희망 없는 기다림도 있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는 일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오래 함께 했던 물건들 속에는 단순한 물질 이상의 추억과 세월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쓰던 책상, 피아노, 책들… 미련을 버리고 나 혼자 살 만큼만 챙겨야 했다.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들어와 집을 비울 때, 신중히 채워온 것들이 순식간에 상자 속으로 쓸려 들어갔다. 마지막 빗자루 질에 남은 미련까지 함께 쓸려나갔다.
낯선 환경에 정착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카운티 관계자들의 친절한 안내 덕분에 안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Fairfax County 관계자들의 따뜻한 관심과 지원은 큰 힘이 되었고,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러나 첫날 밤, 방안에 쌓인 박스들 속에서 혼자 있다는 사실에 마음은 시리고 공허했다. 아이들도 보고 싶고, 먼저 떠난 이도 새삼 그리웠다. 기억은 그리움이 되어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한국 사람도, 한국 가게도, 교회도 보이지 않았다. 속절없이 눈물이 났다. 짐을 푸는 일도, 밥을 먹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동네를 걸었다. 세 블록쯤 내려가니 포토맥 강이 보였다. 강 건너편을 바라보다 또 눈물이 흘렀다.
걷기를 이어가던 어느 날,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노숙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날씨 이야기, 먹은 음식 이야기… 어느새 함께 커피를 마시고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청년의 부모가 부자였으나, 그의 괴팍한 성격과 외도로 인해 가족조차 포기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점차 이곳에 익숙해졌다. 생활 반경도 넓어져 495 벨트웨이를 넘나들고, 근처 작은 봉쇄 수녀원도 찾게 되었다. 힘들 때마다 그곳을 찾아 마음을 달랬고, 수녀님들의 기도와 성가 소리가 큰 위안이 되었다. 매일 성당에 앉아 기도하는 일은 나의 하루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거지 청년 친구도 있고, 수녀원도 자주 찾으며 이곳 주민임을 인정하고 살아가던 즈음, 카운티에서 또다시 방을 옮기라는 편지가 왔다. 이제야 바우처(Voucher, 정부가 월세 일부를 대신 지불해 주는 지원 쿠폰)가 승인되었으니 서류 작업을 하라는 안내였다. 그 동안은 섹션 8 주거 형태여서 임시로 머물렀지만, 이제 나는 정식으로 노인 아파트로 입주하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복지 시설과 생활 지원 서비스가 마련되어 있어, 여러 노인들과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나는 깨달았다.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는 공간이라는 것을. 나의 두 번째 시작은 이렇게 노인 아파트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나는 고독 대신 이웃을 만나고, 상실 대신에 감사의 삶을 배워가고 있다. 앞으로는 받은 만큼 돌려주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감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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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발렌티나 페어팩스,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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