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는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각별한 식물이다. 고대 드루이드교 성직자들은 이 풀의 세 개 이파리가 영원성 즉 땅, 바다, 하늘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살아야 했던 그들은 성패트릭스데이에 연둣빛으로 솟아오른 클로버 새순을 보며 지긋지긋한 혹한이 비로소 물러갔음을 확신했다. 아일랜드의 국화가 클로버꽃인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오후에 근처 숲을 산책하다가 클로버로 가득한 공터에서 잠시 멈췄다. 장시간 원고를 보느라 뻑뻑해진 눈도 달랠 겸 이곳에서 자주 보이는 네잎클로버라도 찾고 싶었다. 역시나. 5분도 되지 않아 다섯 개의 네잎클로버를 찾아냈다. 다시 허리를 펴고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가 빙 둘러 심긴 옛 학교운동장 트랙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산한 운동장 가장자리 벤치에서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른 한 명이 책을 읽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그이는 저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오지랖 넘게 남의 독서를 방해할 마음은 없었다. 한데 뒤쪽으로 걸으며 책을 스쳐보던 발길이 본능적으로 멈췄다. ‘제국주의와 전염병’ 234페이지. 3년 전 내가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책을 그가 읽고 있었던 거다.
“혹시 이 책을 읽어보셨나요?” 인기척을 느낀 그가 돋보기를 벗으며 물었다. “아, 지금 선생님께서 읽고 계신 책을 제가 편집했거든요. 반가운 마음에 그만….”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서렸다. 얼마 전에도 책 읽는 모습을 본 것 같다고 말하자 그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난해 말 은퇴한 뒤 시간 날 때 저쪽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다가 틈틈이 인근 숲이며 공원을 산책했는데, 날이 좋아진 4월부터는 아예 야외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거다. 무성한 나무들 사이에서 자연광으로 책을 읽다 보니 눈의 피로도 덜한 데다 흡사 책에 빠져 살던 소년 시절로 돌아간 듯한 감회가 든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오래 잊고 살던 소중한 무언가를 다시 찾은 듯 아련한 기분이 일렁였다.
햇살 아래서, 무한하게 나른하고 충만하던 독서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살랑살랑 나부끼는 미루나무에 기대어 ‘소공녀’ ‘해바라기 피는 마을’을 읽던 때, 솔숲 공작대에 친구와 마주 앉아 ‘좁은 문’ ‘사랑과 인식의 출발’을 바꿔 읽고는 어둠이 몰려올 때까지 이야기하던 때. 이제라도 마음 맞는 친구들을 야외로 불러내어 어릴 때 읽던 동화를 영어로 읽자고 제안해볼까? 식물학책을 읽고 숲 탐방을 하는 독서모임은 어떨까?
달콤한 공상에서 빠져나오는데 내 왼 손바닥 위 네잎클로버에 머문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대 켈트족 전설에 이 네잎클로버를 지닌 사람에게는 제2의 시력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앞으로 책을 많이 읽으시려면 선생님께도 아주 유용할 듯하네요.” 네잎클로버 하나를 건네자 그이는 흔쾌히 받았고, 우리 책을 알아봐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한 뒤 나는 숲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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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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