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시와 신화에서는 농사가 신성한 예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1960년대 필자가 태어났을 때 부모님은 생계형 농사꾼이셨다. 외딴 섬이라 장터도 물물교환도 없어 집 텃밭에서 기른 것과 손수 만든 것들로 먹거리를 해결했다. 내 기억에 각인 된 가장 오래된 장면 중 하나는 부모님이 땅을 일구며 자연계의 순환에 젖어 살면서 자연에 철저히 순응하는 모습이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은 ‘땅으로 돌아가기(Back to the Land)’ 귀환 운동이 한창이었다. 여기에 불을 지핀 사람은 헬렌(1904-1995)과 스콧 니어링(1883-1983) 부부이다.
결혼 전 스콧은 톨스토이 평화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념에 심취한 골수 좌파였으며, 반자본주의 경제학 교수·반전 평화주의자·환경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는 자기 사상을 담은 집필과 강연회 등 급진적인 사회운동으로 유펜 와튼 스쿨과 스와스모어 칼리지 교수직에서 쫓겨나 미국사회에서 퇴출당하다시피 했다.
결혼 후 세속을 떠나기로 결심한 이들 부부는 버몬트 남서부의 파이크 밸리 숲속에 정착하여 20년을, 메인주 바닷가 인근 브룩스빌로 다시 이주하여 31년을 농장에서 자급자족하며 30권이 넘는 책을 공동 집필하며 51년간 은둔의 여생을 함께 했다. 전기도 전화도 라디오도 없는 고립된 농장에서 들판에서 모은 돌로 손수 자신의 집을 짓고, 유기농 농법과 채식주의를 옹호하며 일주일에 하루씩 단식을 하며 톨스토이식 금욕주의 농촌 자급자족을 실천했다.
부인 헬렌과 공동 집필한 자급자족과 채식주의 기술농법을 담은 에세이(‘Living the Good Life’ 1954)가 베스트셀러가 되자 이 책에 영감을 받은 사람들은 니어링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을 배우고자 브룩스빌에 있는 포레스트 팜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추산에 따르면 1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를 거쳐 땅으로 돌아가는 삶을 선택했다고 한다.
헬렌과 스콧은 좋은 삶을 살기위해 목표를 정했다, 유급 노동시장에서 독립하여 생활하는 것, 땅을 일구고 유기농 식품을 먹음으로써 건강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이윤 기반의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부부는 자급자족 농장을 운영하고, 메이플 시럽과 설탕을 생산하고,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며 고기·생선·계란·커피·차·술을 먹거나 마시지 않았고, 가공식품을 거부하며 반소비주의 이상을 존중하는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평생 채식주의자로 살았다.
헬렌과 스콧 니어링의 삶과 필자의 부모님의 삶이 오버랩 되면서 은퇴 후 삶을 단순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인생을 보내는 방식은-햇볕을 쬐고 숲속을 걷고 음악을 들으며 글을 쓰며 과일 나무와 채소를 돌보며 장작 패기, 물 기르기, 고랑 파기로 기계적인 운동 대신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도록-땅으로 돌아가 본성에 따라 야생으로 사는 삶이다.
물론 단순한 노동과 숲속 은둔생활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땅으로 돌아가는 선택이 나를 힘들게 할 수도 있고, 시골 생활의 불편함이 도시생활과 다르게 많은 희생이 있을 수 있다.
좋은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루 4시간 육체노동과 4시간 정신노동, 4시간 친교, 4시간 여가와 휴식, 8시간 수면의 조합이 아닐까? 노동 없는 여가와 휴식은 고통일 뿐이다.
세상의 모든 이치는 대립하며 조화를 이룬다. 질병은 건강을 상쾌한 것으로 만들 듯이 노동은 휴식을 달콤한 것으로 만든다. 땅으로 돌아가는 소박한 철학은 육체노동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암묵적인 나의 신체와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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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정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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