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한국일보를 45년째 구독하고 있는 김병권(왼쪽부터), 김태숙 부부가 자택에서 45년째 이민생활과 함께 한 본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민생활 든든한 조력자”
■45년째 구독 김병권씨 부부
“뉴욕한국일보는 저희 부부가 미국 이민생활의 첫 발을 내딛는데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한국에서 결혼식을 마친 다음날인 1972년 2월20일 자신들의 더 큰 꿈을 펼치기 위해 신혼여행을 겸해 뉴욕행을 선택한 김병권(74ㆍ뉴저지 테너플라이 거주), 김태숙(72) 부부.
뉴욕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뉴욕에 도착한 김 씨 부부에게 뉴욕한국일보는 누구보다 더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김 씨 부부는 뉴욕에 도착한 해인 1972년 3월20일부터 뉴욕한국일보를 45년째 구독하고 있는 장수 독자다.
남편인 김병권 씨는 “박정희 대통령 정권 시절 큰 꿈을 펼치고 싶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 와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씨 부부가 이민 온지 얼마 안 된 초창기만 하더라도 한인들이 많지 않아 주변에서 뉴욕에 대한 생활정보를 얻기가 녹록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내인 김태숙 씨는 “그 당시 뉴욕에서 한인 신문이라고는 한국일보가 유일했다. 미국과 뉴욕 한인사회의 정보를 얻기 위해 한국일보를 구독하기 시작한 게 벌써 40년이 넘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미국으로 이민 와 자동차 정비 기술을 배우며 틈틈이 컴퓨터 교육을 받아 커네티컷 네슬러 본사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던 김병권씨는 2013년 은퇴한 이후 한국일보는 더 가까운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처음 신문을 구독할 당시만 해도 1면으로 구성된 신문을 2~4일이 걸려 우편으로 받아 봤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로컬면과 한국판 등 다양한 지면 구성으로 삶의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며 창간 반세기를 맞은 한국일보와 함께 걸어온 이민생활을 회고했다.
컬럼비아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고 뉴욕대학교에서 간호학 박사학위를 받아 브루클린 세인트 조셉 대학과 헌터칼리지에서 간호학과 교수로 재직했던 아내 김택숙 씨도 한국 소식도 빠르게 접할 뿐 더러 미국 이민생활에 필요한 유익하면서도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한국일보를 아직까지도 구독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전했다.
김씨 부부는 “한국일보가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을 잘 맞춘 편집으로 정확한 진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정론지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각계 분야 전문가들의 칼럼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얻는데 유용한 신문”이라고 평가했다.
김 씨 부부는 처음에는 막막했던 이민생활을 뉴욕한국일보와 함께 빠르게 정착해 나갈 수 있었다며 반세기 동안 한인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해준 노고에 감사함을 전했다.
리차드 전 독자는 운동을 하기 위해 자주 애용하는 뉴저지 알파인 골프클럽을 찾을 때도 뉴욕한국일보와 늘 함께한다.
■71년부터 최장기 독자 리차드 전씨
“뉴욕한국일보는 제가 이민생활을 하는 동안 고향의 향수를 달래주고 연락이 닿지 않았던 친구도 찾아주는 영원한 동반자입니다.”
뉴욕 한인사회에서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친목 봉사단체 중 하나인 뉴욕한인라이온스클럽을 창립한 리차드 전(85ㆍ한국명 전인문) 전 초대회장은 뉴욕한국일보와의 인연이 깊다.
뉴저지주 테너플라이에 거주하는 전 회장은 지난 1971년 4월1일부터 한국일보를 구독하고 있는 현존하는 최장기 독자다.
한국에서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1970년대 초 한인들에게는 봉사의 손길이 절실히 필요하던 시절이었다.언어적인 문제로 이민 수속 할 때나 법적인 문제 등에 직면했을 때 막막했던 한인 이민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전 회장은 1974년 9월25일 뉴욕한인라이온스클럽을 출범시켰다.
전 회장은 “뉴욕한인라이온스클럽이 창립하고 활동을 막 시작할 무렵 뉴욕한국일보가 없었다면 한인사회에 더 많은 도움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뉴욕한국일보의 기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라이온스클럽의 정보를 얻을 수 있어 지금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전 회장은 “뉴욕한인라이온스클럽이 창립할 당시만 해도 한인사회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 매체는 뉴욕한국일보가 유일했다”며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한인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언론사로 자리를 지켜나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태권도 공인 9단이기도 한 전 회장은 1962년 유학생으로 미국으로 이민 온 후 롱아일랜드대학원에서 유학하면서 한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뉴욕에 태권도장을 열었던 무도인이다.
전 회장은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들인 도날드 트럼프 주니어와 전설적인 축구 영웅인 펠레의 아들 등 유명인사의 자녀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한국 문화를 전파해왔다. 지금까지도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전 회장은 운동하기 전 항상 한국일보를 빼놓지 않고 보는 것도 습관처럼 돼 버렸다며 창간 50주년을 축하했다.
전 회장은 “한국 소식을 접할 길이 없던 이민 초창기 시절에 한국 뿐 아니라 뉴욕 한인 사회 소식을 발 빠르고 공정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지금까지 충실히 해온 만큼 앞으로도 한인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지침이자 길라잡이가 되는 언론사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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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홍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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