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책임에서 벗어난 나이든 여성들은 삶의 지향성이나 방향감각을 상실하기 쉽다.
평생 가족을 위해 헌신해온‘어머니’를 떠올려 보라. 말 그대로 현명한 엄마이자 좋은 아내였던 이‘여성’은 가계관리와 가족 뒷바라지에 온 정성을 기울이며 반백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몇 해 전 남편이 먼저 떠났고, 오래 전에 출가한 딸도 벌써 40줄로 접어들었다. 자신 역시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다. 뒤를 돌아보면“다 이룬 삶”이고 앞을 내다보면“텅 빈 삶”이다. 남편의 타계와 함께 가사 책임에서도 해방됐지만 무엇으로 눈앞의 시간을 채워가야 할지 선뜻 감이 잡히지 않는다.
자식들 모두 가정 이루고 남편마저 떠나‘텅 빈 여생’
평생 가정만 지켰기에 뒤늦게 사회와 어울리기 힘들어
그냥 두면 고립 빠져… 서서히 새로운 생활로 인도해야
이제 집안에는 달랑 그녀 혼자다.
늘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판에 박힌 일상을 보내왔지만, 거기엔 편안한 익숙함과 나름의 빵빵한 보람이 있었다. 하지만 무거운 짐에서 벗어난 지금, 홀가분하기보다는 무료하다.
딸과 달리 전업주부로 한 평생을 보낸 그녀의 세계는 너무도 좁다. 집안의 울타리가 그녀의 세계를 구획 짓는 경계선이다. 그 경계선을 넘어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데에는 늘 두려움이 따른다.
조지타운 대학 언어학 교수인 데보라 탄넨 박사는 일상의 책임에서 벗어난 나이든 여성들은 이처럼 삶의 지향성이나 방향감각을 상실하기 쉽다고 말한다.
평생 바깥세상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구시대’ 전업주부들에게 ‘새로움’은 그다지 어필하지 않는다.
직장 일을 하며 사회적 공력을 쌓은 남편들과는 다르다. 아무래도 적응력이 떨어진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외는 말 그대로 예외일 뿐이다.
그러니 집 밖으로 나오면 영 어색하고 불편하다. 좁은 세계에 집중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평생을 지내온 여성일수록 정도가 심하다.
게다가 탄넨 박사가 지적하듯 나이가 들면 친구를 사귀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많은 고령 여성들은 그들이 통제하는 세계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개인의 세계가 좁을수록, 고립 위험은 커진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노인병 전문의인 로난 펙토라 박사는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개인은 우울증에 빠지거나 영양결핍에 걸릴 위험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사회화의 기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외톨이의 삶을 꾸려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어울렁 더울렁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삶의 기본 패턴이다.
사람 사이의 교류는 인지기능과 신체활동을 강화해 준다. 뒤집어 말하면 건강한 노년의 삶을 이끌어가기 위해 사회적 교류가 대단히 중요하다는 얘기다.
펙토라 박사는 “활기찬 사회적 네트웍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은 건전한 노년생활의 핵심적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한다.
세상을 등진 채 고립의 늪 속으로 빠져드는 어머니를 건져내는 것은 장성한 자녀의 임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세상 밖으로 나서는 것을 꺼리는 어머니를 사회적 활동으로 이끌려면 신경을 써야 할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너무 나대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다가 “왜 내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이냐”는 노모의 반발과 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다.
펙토라 박사는 먼저 너무 많은 시간을 어머니 혼자 지내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식의 차분한 접근법을 추천한다.
비사교적인 어머니의 성격을 감안, “혼자 있는 시간이나 정숙한 시간을 갖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니, 매일 거르지 말고 사회활동을 하라는 게 아니다”는 점을 강조해 가며 어머니가 느낄 위압감을 다소나마 누그러뜨리는 게 좋다.
다음으로 어디서 어떻게 사회활동을 시작해야 할지를 정해야 한다. 펙토라 박사는 가급적 익숙한 과거의 활동 쪽에 무게 추를 놓을 것을 권한다.
어머니가 집안일에 파묻혀 지내기 이전에 즐기던 활동을 들춰보는 것이 좋은 출발선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어린 자녀의 침대 옆에 앉아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다면 동네 도서관이나 병원, 혹은 교회에서 같은 일을 재개할 수 있다.
펙토라 박사는 무엇을 할 것인지는 어머니의 뜻을 존중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어린 시절 부모가 시켰던 과외활동을 떠올려보면 피아노 교습처럼 재미있는 것도 많았지만 끔찍이 하기 싫었던 활동도 많았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엄마 역시 딸이 자신을 위해 권하는 활동 가운데 정말 하기 싫은 것이 있을 수 있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활동은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하다.
나이든 여성 모두가 깨어 있는 시간을 온통 사교활동이나 사회활동으로 채우길 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교성이 강하다면 연령과 취미, 종교 등의 조건이 맞는 노인 커뮤니티 시설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비사교적인 사람은 ‘조용한 친교’를 원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들에겐 가끔씩 마음에 맞는 사람을 집으로 초대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정도가 안전하고 유쾌한 어울림이다.
일단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어머니는 익숙한 사람이 곁에 있어 주길 원한다. 그리고 십중팔구, 나이든 여성이 가장 선호하는 익숙한 얼굴은 ‘딸’이다.
메신저-패코트 박사는 ‘새로운 사회’로의 이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녀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다고 말한다.
메신저-패코트 박사는 일찍부터 어머니와 함께 노년의 사회활동과 새로운 시작에 관해 의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한다.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흐르고, 어머니가 새 출발을 필요로 하는 전환기는 아차 하는 사이에 코앞에 닥친다.
메신저-패코트 박사 역시 어머니의 캘린더를 채워주는 일을 마치 서둘러 마쳐야 할 과제를 해치우는 식으로 처리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고립은 나쁘지만, 나이 들어 누군가의 통제를 받는 듯한 느낌도 그에 못지않게 나쁘다.
펙토라 박사는 대부분의 경우 어머니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런 저런 기회를 접하다 보면 관심 있는 일을 발견하고 직접 “발을 담그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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