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말하는 ‘맹장염’의 실체는 ‘충수염’이라고 해야 맞다.
맹장(cecum)은 소장이 대장으로 이어지는 첫 번째 부위로 공간이 넓다. 그 한 귀퉁이에 쥐꼬리 같은 모양으로 돌기가 달려 있는데, 이것이 충수(appendix)이다. 여기에 염증이 생겨서, 열이 나고 배가 아프고, 수술하게 되므로 충수염(appendicitis)이라고 불러야 한다(실제 그 옆의 진짜 맹장은 염증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하도 오랫동안 모든 사람이 맹장염이라고 불러왔기에, 여기서도 편의상 ‘맹장염’이라고 하겠다.
또 많은 사람들이 맹장의 위치를 잘못 알고 있다. 맹장이 ‘남자는 왼쪽, 여자는 오른쪽‘에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너무나 많아서 어이가 없다. 남녀 모두 맹장의 위치는 오른쪽 하복부이다.
그런데, 왜 맹장염이 의사들을 혼란시키는가?
그 이유는 맹장염 초기에는 복통이 맹장에 위치한 오른쪽 하복부가 아픈 것이 아니라 주로 명치나 상복부가 아프기 때문이다. 또 처음에는 구역질이 나기도 하고, 맹장염의 특징의 하나인 열이 없는 수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 어떤 때는 설사를 동반하기도 한다. 맹장 주위를 눌렀을 때도 특별한 통증이 없는 수도 많다. 그래서 처음 진찰한 의사들은 급성위염, 급성 바이러스성 장염 등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시간이 하루 정도 지나면, 복통은 점차 맹장이 위치한 오른쪽 하복부로 이동하고 통증은 점점 심해진다. 그리고 이때는 대부분 열이 101~102°F 정도 난다. 환자와 보호자는 안 되겠다 싶어서 다른 병원을 찾게 되는데, 이 때 본 의사 선생님들은 쉽게 ‘맹장염’이라고 진단을 내린다.
그러면 환자의 보호자는 첫 번째 본 의사의 실력이 형편없다고 생각하며, “아니 어떻게 그 쉬운 맹장염 하나로 진단을 못 내리는 의사가 있단 말인가?” 하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러나 환자가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면, 맹장염의 특징적 증세가 없는 상황에서 하루 이틀 뒤 그 쪽으로 병이 진전할 것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필자는 갑자기 명치 복통으로 찾아오는 환자들에게, 내일이라도 증세가 심해지고, 특히 오른쪽 하복부가 아파진다든가 열이 나면, 맹장염으로 진단이 바뀌니 꼭 다시 찾아오라고 하는데, 1년에 서너 명은 다시 와서 맹장염으로 진단을 받는다.
맹장염 외에도, 많은 병은 진도와 상황에 따라 그 때 그 때 병의 진단이 바뀌는 수가 있다. 이 때 처음 진단 내린 의사는 그 상황에 맞는 진단을 내리는 것이고, 나중에 상황이 바뀌면 거기에 맞게 추가 진단을 내린다. 그러므로 어떤 진단이 붙더라도 병의 경과가 달라지면 다시 병원을 찾아가 새로운 검사와 치료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문의 (213)480-7770
차 민 영 <내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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