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선교사 딸로 태어나
근대 한국사 산증인
중가주 머세드서 여생
“금강산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야. 지금도 장맛비 물안개에 싸여 있던 금강산이 눈에 선하지. 원산 해수욕장의 명사십리는 잊을 수 없어”
유창한 한국말로 금강산과 원산 명사십리를 떠올리며 감회에 젖은 벽안의 백인 할머니. 그녀가 떠올리는 한국에 대한 추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을 아름답게 기억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이 주인공은 올해 102세가 된 에블린 맥퀸 여사다. 아직도 잠에 들기 전에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草蟲圖)를 보며 잠에 빠져 든다는 맥퀸 여사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한국에 대한 진한 사랑이 녹아 있었다.
그녀가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선교사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맥퀸 여사는 1907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말하자면 한국이 고향인 셈이다. 그녀의 부친인 아서 베커는 선교사이자 교육자로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의 초기 학감과 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 과학교육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맥퀸 여사는 100년 가까이 됐을 어린 시절 한국에 대한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여름이 되면 원산 해수욕장에서 수영복이 마를 시간이 없이 수영을 했어. 해가 기울면 아낙네들이 모여서 남편 흉을 보며 긴 밤을 보냈지. 그게 한국식 사랑의 표현이야. 댕기머리를 날리며 처녀들이 그네를 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강아지를 잡아먹는 일도 많았지. 한국 사람들은 가난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고 고난을 낙천적으로 이겨내는 아름다운 민족이야.”
맥퀸 여사가 들려주는 ‘평양 이야기’에는 한국이 남북으로 갈리기 전에 우리 민족의 원형과 일제 강점기 한민족의 설움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일본 순사의 강압적인 모습은 백인 선교사 딸의 머릿속에도 무섭게 기억돼 있다고 했다.
열 살 때 미국으로 온 맥퀸 여사는 평양에서 어린 시절 친구로 지내던 조지 맥퀸과 결혼했다. 조지 맥퀸은 한국어를 영어로 표시하는 표기법을 만들었고 1948년에 사망하기까지 초기 한미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며, 그의 부친은 평양 숭실학교 설립자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강하게 비난했던 선교사 S. 맥퀸(한국명 윤산온)이다.
맥퀸 여사 본인도 70년대 초반까지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며 한국 문화를 연구했고 그가 1962년 출간한 ‘한국의 미술’은 지금도 한국문화 연구도서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지금은 중가주의 작은 도시 머세드에서 딸과 함께 노년을 보내고 있는 맥퀸 여사가 지난달 102세 생일을 맞았다. 연세대를 졸업한 UC머세드의 강성모 총장은 “머세드에 살고 있는 맥퀸 여사를 만나 ‘당신의 아버지가 젊음을 바친 대학교에서 과학도의 꿈을 키운 청년이 수십 년이 지나고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 당신이 살고 있는 도시의 대학의 총장이 됐다’는 말을 전하며 가슴이 뭉클해졌다”고 말했다.
<김연신 기자>
평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102세의 에블린 맥퀸 여사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라며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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