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장사지낼 때 망자가 눕는 관에는 북두칠성을 새겨 넣은 널판을 까는 장례 풍습이 있었다. 이 널판을 지고 묻혀야 망자가 편안히 저승에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검은 옻칠을 칠하고 북두칠성을 그려 넣은 이 나무판은 저승으로 여겨졌던 북두칠성까지 망자의 영혼이 편안히 가기를 바라는 ‘산 자’의 배려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오늘날도 염을 할 때 망자의 시신이 굳기 전에 손발을 반듯이 펴서 시신이 움직이지 않도록 끈으로 묶어 입관할 때에 주검과 함께 넣는데 바로 이 널판이 ‘칠성판’이다.
망자의 편한 저승길을 위한 ‘산 자’의‘배려’였던 이 ‘칠성판’이 치를 떠는 ‘공포’가 되어 나타난 것은 군사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렇게 살기를 내뿜던 80년대였다.
고문도구가 되어 나타난 ‘칠성판’은 군사독재에 항거하던 숱한 시민들의 인격을 피폐하게 만들었고 때론 목숨까지 앗아가기도 했던 공포와 치욕의 대명사였다.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 만들어냈다는 ‘칠성판 고문’은 피조사자를 나무판 위에 묶고 얼굴을 가린 채 고춧가루를 탄 물을 코와 입에 붓는 아주 고통스러운 고문수법이다.
그러나 이 고문은 결국 군사정권의 몰락을 앞당겼고, 고문이 자행된 남영동 보안분실 509호는 암울했던 과거사를 반성하는 인권기념관이 되어 있다.
망각 속에 묻혀있던 이 칠성판의 추억을 다시 떠올린 것은 여느 후진국의 군사정권이 아닌 인권과 민주주의의 교본을 자처하는 21세기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었다.
최근 미 국무부가 부시 시절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자행된 CIA의 15가지의 고문기법 메모를 공개했는데 벌레 든 상자에 집어넣기, 잠 안 재우기, 추운 독방에 감금하기, 옷 벗긴 채 장시간 세워두기, 뺨 때리기 등 고문기법 중에 바로 이 칠성판 고문’이 들어 있다.
당시 법무부 부차관보였던 한인 존 유 등 3명의 고위관계자를 거쳐 럼스펠드 장관이 승인한 이 메모에는 ‘칠성판 고문’을 지칭하는 ‘워터보딩’ 고문기법이 들어있다.
‘사람을 널빤지에 묶고 얼굴에 젖은 수건을 씌운 다음 물을 붓는 고문’으로 ‘큰 공포와 고통을 주는 신문 방법’으로 기록된 ‘워터보딩’이 바로 21세기 미국에서 되살아난 미국식 ‘칠성판 고문’이었던 셈이다. 이 고문을 당하면 곧바로 토하거나, 질식사의 공포에 질려 숨을 쉬게 해 달라고 빌게 될 만큼 고통스럽고 치욕적이라고 한다.
80년대 한국 군사독재 정권이 사용했던 잔혹한 고문기법이 21세기 미국에서 불과 몇 년 전까지 자행됐다는 사실은 매년 세계 인권백서를 발표하는 미국으로서는 도덕성에 씻기 어려운 상처가 된 것은 분명하다.
오바마의 언급처럼 ‘어둡고 고통스런 역사의 한 장’을 넘기고 있는 미국에게 지금은 ‘반성과 청산의 시간’이 절실하다. 남영동 보안분실이 인권기념관이 되었듯이 관타나모 수용소에도 미국 인권기념관이 들어설 날을 고대해 본다.
김상목/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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