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0일은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 날이다. 전쟁과 학살로 5,500만명의 인명을 앗아간 히틀러는 인류 최악의 재앙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누군가 그를 암살할 수 있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하는 아쉬운 의문은 지금도 종종 제기된다.
실제 독일에서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시도가 약 15차례 있었다. 가장 마지막에 시도된 암살 음모가 최근 극장에서 상영된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발키리’(Valkyrie)에서 묘사됐는데 그 때서라도 성공했다면 1,000만명의 불필요한 희생을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사실 히틀러를 암살하려는 음모는 1938년부터 시작됐다. 히틀러가 군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해 전쟁을 일으키려 하자 프란츠 할더 육군참모총장은 히틀러를 체포하기로 결심하고 영국 정부에 히틀러에 강경하게 대항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뮌헨 협정에서 영국과 프랑스가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를 독일에 양보하는 바람에 히틀러는 전쟁 대신 외교 승리를 얻었고 쿠데타 계획은 무너졌다. 1941년에는 프랑스 점령군 사령관이 히틀러를 암살할 계획이었지만 방문 계획이 취소되는 바람에 무산했다. 1943년에는 시한폭탄을 히틀러의 비행기에 싣는데 성공했으나 무슨 이유 때문인지 폭발하지 않았다. 마침내 1944년 7월20일 히틀러의 작전회의실에서 폭탄이 터졌지만 마치 하늘이 지켜준 듯 히틀러는 무사했다.
음모자들이 당초 히틀러를 암살하려 한 이유는 너무 늦기 전에 그나마 독일에 유리한 평화를 얻고자 함이었지만 1944년에는 쿠데타가 성공하더라도 무조건 항복 밖에 기다리는 것이 없었다. 음모자들은 쿠데타 성공이 희박하다고 여겼고 자신들이 독일 역사에서 반역자로 길이 기억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도 자신 뿐 아니라 가족의 생명을 걸고 암살을 시도한 이유는 사실 이제는 잊혀진 개념 때문이다.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해 처형된 약 200명의 장교들과 외무성 관리들, 지식인들 등은 대다수가 귀족 출신이었다. 그들의 다수는 히틀러 암살을 독일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참회이자 독일국민을 위한 희생으로 여겼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 지도층일수록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요구된다는 지배층의 시대착오적 개념이지만 그나마 20세기 초에 미국 재벌들이 부를 사회에 환원한 이유였다.
오늘날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경영인들이 금융위기를 초래하고도 반성의 기미는 고사하고 납세자 세금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보너스를 챙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면, 이에 대한 사회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사는 신시대 귀족층이 아닌가 싶다. 단 자력으로 성공했다고 상상해서인지 의무에 대한 개념은 사라졌다. 오늘날 사회를 지도하는 그들의 행태를 보면 나치 독일의 귀족들을 존경하게 만들 정도다.
우정아 외신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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