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음악회 나들이를 부쩍 즐기고 있다. 종류를 가리지도 않는다. 대중가요, 클래식 음악, 오페라 할 것 없이 기회가 되면 콘서트홀을 찾아간다. 그다지 웃을 일 없는 현실에서 따뜻한 위안을 얻고자 함이다. 왜 음악을 통한 위안인가 하면 “꿈을 이루라는 게 아니라 꾸기라도 해보라”던 강마에의 독설 때문이다. 좀 더 거창한 이유도 있겠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 그나마 위안을 받은 순간이 스크린과 TV 앞이었기에 창피하지만 ‘베토벤 바이러스’ 강마에가 이유다.
한 달에 2번 이상 음악회를 간다는 원칙 아래 음악과의 만남이 시작됐다. 시계바늘을 붙들어 매고 싶었던 음악회도 있었고, 연신 졸다가 콘서트홀을 나선 음악회도 있었다. 그리고 지난 16일 드디어 LA오페라의 바그너 링 사이클보다 더 기다리고 기다렸던 음악회에 갔다. 새라 장의 브람스 바이얼린 협주곡 D장조 연주다. 평일 저녁 왕복 3시간을 할애하며 오렌지카운티 퍼포밍 아츠 센터에 내려갔다.
클래식 음악회를 특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바이얼리니스트 새라 장이 오랜 만에 남가주에서 음악회를 갖는 것도 아닌데 기필코 가야 했다. 아니 들어야 했다. 브람스 바이얼린 협주곡이어서가 첫 번째 이유였고 오랜 기다림 끝에 브람스를 레코딩 한다는 새라 장의 연주이기 때문이었다.
브람스를 자장가 작곡가로만 알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 하세요’(Aimez-vous Brahms?)를 계기로 브람스 음악에는 묘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브람스 바이얼린 협주곡 D장조 3악장은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e blood)의 엔딩 크레딧 음악으로 흐르는 바람에 숱하게 들었던 곡이었다. 대니엘 데이루이스의 대사 “I’m finished.를 마지막으로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안네-소피 뮤터의 연주은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그리고 그렇게 기다렸던 새라 장의 브람스는 꿈을 꾸게 만들었다. 활을 커다랗게 휘두르는 그녀 특유의 열정적인 보잉과 무대 위에서 춤을 추듯 걸어 다니는 그녀는 꿈을 이루라고 채찍질하고 있었다. 여덟 살에 브람스 곡을 연주할 실력을 갖추었던 새라 장이다. 그러나,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무대 연주를 미루었고, 스물여덟이 넘어서야 레코딩을 계획했다. 나이가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브람스의 사색적이고 영묘한 음악세계를 제대로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지금 우린 오랜 기다림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바닥까지 내려왔기를 희망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길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터널 끝엔 분명히 빛이 있다. 터널이 길다고 짜증내기보다는 터널을 빠져나가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기를 택하는 것이 낫다.
하은선 / H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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