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3년 12월 16일 스스로를 ‘자유의 아들’(Sons of Liberty)이라 부른 일단의 보스턴 시민들은 인디언으로 변장한 후 항구에 정박해 있던 세척의 영국 배에 올라타 300 상자의 엽차를 바다에 던졌다. 영국 정부가 엽차에 부과한 세금에 항의하기 위한 이 행동은 영국 의회와 왕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며 차에 대한 배상이 이뤄질 때까지 보스턴 항구를 봉쇄하고 보스턴에 영국군을 주둔시키는 것을 포함한 ‘강제법’(Coercive Acts)을 통과시켰다.
보스턴 시민을 포함한 식민지 주민들은 이를 ‘참을 수 없는 법’(Intolerable Acts)이라 부르며 저항했다. 위기에 빠진 보스턴 시민들을 돕고 영국에 대한 조직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대륙 의회’(Continental Congress)가 조직됐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보스턴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은 1775년 4월 19일 식민지 민병대가 가지고 있던 무기를 몰수하기 위해 인근 렉싱턴과 콩코드로 진군하며 여기서 민병대와 전투가 벌어져 양쪽 모두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것이 미국 독립 전쟁의 발단이다.
영국 정부가 차에 붙인 세금의 액수는 미미했다. 이와 함께 차 값을 내렸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지출하는 돈은 오히려 줄어들게 돼 있었다. 그러나 돈 액수가 아니라 원칙이 문제였다. 식민지 주민 대표가 없는 영국 의회가 부과한 세금을 받아들인다면 영국 의회는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얼마만큼의 세금도 거둬들일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식민지 주민은 영국의 노예나 다름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 식민지 지도자들의 주장이었다. ‘대표권 없는 과세 없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벌어진 것이 독립전쟁이고 그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이 바로 ‘보스턴 티 파티’다. 이 티 파티는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종종 이용된다. 티 파티 200주년 기념일인 1973년에는 보스턴에서 닉슨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대중 집회가 열렸고 1998년에는 두 명의 연방 하원의원이 연방 세법 책자를 차 상자에 넣어 보스턴 앞 바다에 던짐으로써 복잡하고 불공평한 미국 조세 제도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2006년에는 대대적인 감세를 기본 강령으로 하는 ‘보스턴 차 당’(Boston Tea Party)이 창당됐다.
연방 세금 보고 마감일인 15일 백악관을 마주보는 워싱턴 DC의 라파예트 팍을 비롯 미 50개주 300여 곳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증세와 무절제한 지출에 항의하는 ‘티 파티’ 행사가 열렸다. 인터넷을 통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이번 행사는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 행사로는 최대 규모다.
7,000억 달러가 넘는 오바마의 경기 부양안에는 진짜 경기 부양을 위해 필요한 것도 있지만 상당수가 지역 구민을 만족시키기 위한 선심용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이 높다. 당시에는 경기가 워낙 나쁘다보니 엉겁결에 그냥 넘어갔지만 이제 이를 비판하기 위한 움직임이 조직화되고 있다.
세금과 비대한 정부에 대한 반감은 미국이 태어났을 때부터 미국민 정서에 깊게 배어 있다. 공황과 전쟁 등 위기가 닥쳤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작은 정부’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루즈벨트와 존슨에 이어 나온 레이건이 그 예다. 오바마의 큰 정부 시대가 얼마나 갈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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