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결승전이 열린 23일 저녁. ‘대~한민국!’ 함성이 지축을 흔든 것은 경기장만이 아니었다. 대형 TV를 갖춘 주점·식당들마다 함께 응원하려고 몰린 손님들로 한인타운 전체가 ‘대~한민국!’ 함성의 도가니였다.
한국대표팀이 한 팀을 제치고, 다음 팀을 제치며 샌디에고 팻코팍에서 LA 다저스테디엄으로 전진해온 ‘승리의 행진’10일 동안 한인들의 응원 열기는 다져지고 띄워지며 무르익었다. 대회 구비 구비마다 지겹도록 맞부딪쳐온 일본팀과 마침내 결승전이 열린 23일, 응원 열기는 가히 절정에 달했다.
아침부터 신문사로, 여행사로 다저스테디엄 입장권 문의가 쇄도했고, 주점, 식당들은 예약 전화를 받느라 하루 종일 부산했다. 오후 6시30분 경기 시작 즈음해서 주점·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발길을 돌리거나 서서 경기를 봐야 했을 정도였다.
“맥주 마시며 경기를 보자”는 친구들의 제의에 따라 경기 2시간 전쯤 단골주점에 전화를 했던 한 직장인은 통나무 임시의자를 겨우 차지할 수 있었다.
“그 시간에 벌써 예약이 다 찼다고 하더군요. 주인과 안면이 있는 사이인데도 워낙 손님이 밀리니 다른 방법이 없더군요”
남편이 운동을 좋아해 일찌감치 식당에 자리를 예약했던 50대 주부는 “우리가 이렇게 애국자인줄 몰랐다”고 했다. 한국 선수가 날리는 볼 하나에 식당 안 손님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환호하고 박수치고 소리를 지르는 데 “그런 애국자들이 없더라”는 것이었다.
환호와 함성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9회 말 일본과 동점이 되었을 때. LA 큰가마 돌솥 설렁탕의 매니저 에릭 하씨는 그 순간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고 전한다.
손님들의 함성소리는 지축을 뒤흔들었고 기쁨을 감당할 길 없는 일부 손님들은 의자 위로 올라가 환호하는 등 말 그대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식당 측은 막대 풍선, 북 등 응원도구를 준비해두었는데 너무 흥분해서 북을 치느라 북채가 부러졌을 정도였다.
그리고 나서 연장전으로 이어진 10회 초. 일본이 두 점을 나자 그 많은 손님들이 모두 한꺼번에 한숨을 내쉬는 데 “한숨소리로 땅이 꺼지는 듯 했다”. 마침내 10회 말 안타깝게 한국이 패배를 하자 “많은 분들이 눈물을 흘리더군요. 남자 손님들도 울었어요”라고 그는 전한다.
“생면부지의 손님들이 단지 같은 한인이라는 사실 하나로 같이 기뻐하고 같이 슬퍼했어요. 한인사회에서 정말 오랜만에 보는 열띤 순간들이었습니다”
응원 열기만큼 폭발적이었던 것은 매상. 불경기로 손님이 줄어 울상이던 식당·주점, 사우나 등 업소들은 뜻하지 않은 ‘WBC 대목’으로 한바탕 신이 났다. 음식도 음식이지만 매상을 올려준 일등 공신은 술. 가슴 졸이느라 한잔, 신나서 한잔, 안타까워서 한잔 … 경기 내내 손님들이 술을 마시다 보니 매상이 평소의 두 세배를 훌쩍 뛰어 넘었다. 업주들은 “오늘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지난 며칠 싱글벙글했다.
잔치는 끝났다. 응원은 한바탕의 카타르시스였다. 환호로 눈물로 감정적 스트레스들을 모두 씻어냈으니 우리 ‘삶의 구장’에서 다시 힘차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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