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악의 금융위기라는 격동의 시기에 때마침 경제부 기자를 하느라 때아닌 경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유동성, 주택저당증권, 국채수익율, 유가증권, 리보금리, 공매도…” 대학에서 경제학 원론을 수강할 때도 내용이 복잡해 건너뛰던 용어들이 기사에 매일 등장 한다.
베어스턴스, 리먼브라더스, 메릴린치, 워싱턴뮤추얼, 와코비아, AIG 등 굴지의 금융기관들이 줄초상이 나고 워싱턴과 월가가 구제금융 허리케인으로 요동치는 덕분에 “김기자, 요새 바쁘겠어요?”라는 인사를 많이 받았다.
월가에서 첨단금융공학 이론에 근거해 만들어낸 파생상품이 거래되며 버블이 발생했다는데 그 과정이 실타래처럼 엉켜 있으니 기사를 쓰면서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나 작금의 사태에 한 가지 원인을 지목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월가의 탐욕과 도덕성의 결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뛰던 시절에는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에게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남발하던 금융기관들이 이제는 신용을 믿을 수 없다며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서민들의 돈줄을 부여잡고 있다. 월가의 ‘똑똑하신’ 투자 은행가들은 모기지를 잘게 쪼개고 합쳐서 펀드 형태의 파생상품으로 만들었고 이를 사고팔며 ‘폭탄 돌리기’ 게임을 즐겼다. 막대한 수수료도 챙겼다.
아슬아슬하던 신용의 고리가 빠지며 폭탄이 터지려고 하자 덩치 큰 은행들끼리도 무섭다며 서로 돈을 빌려주지 않고 엄살을 부리고 있다. 신자유주의로 화려하게 치장했던 월가의 금융귀족들은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다.
미국은 정직과 신용이 통하는 사회라고 배웠다. 정직과 신용은 수많은 이민자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시켜 준 원동력이었다. 수십 장의 주택융자 서류도 정직하게 돈을 갚겠다는 집주인과 정상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겠다는 금융기관의 신뢰가 빠지면 하찮은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반면에 2006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방글라데시 그라민 은행의 총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신뢰를 바탕으로 대출을 해 98%의 대출 회수율을 기록했다. 한인 커뮤니티 경제 성장의 바탕이 된 것도 저리의 SBA융자를 받아 창업을 하고 열심히 일한 한인 자영업자들의 정직과 노력이었다. 이에 비하면 지난 몇 년 동안 월가에서 벌어진 잔치는 탐욕으로 가득했다.
불교에서는 탐욕과 노여움, 어리석음을 삼독(三毒)이라 했고 어리석음을 깨야지만 탐욕과 노여움을 버릴 수 있다고 가르친다. 기독교에서는 탐욕(greed)은 경계하지만 열심히 일해 합리적인 방법으로 경제적인 부를 추구하려는 소망(desire)은 미덕으로 간주한다.
미국에서 탐욕이 아닌 미래에 대한 소망이 다시 살아나고 무너진 도덕성이 바로 세워져 내년 이맘때는 주가가 연일 상승하고 실물 경제가 활기차게 돌아간다는 기사를 쓰기에 바쁜 날이 오길 기대해본다.
김연신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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