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언론사에서 나왔어요? 다운타운 봉제 기사 쓰는 기자 얼굴이나 봅시다. 난 봉제 관련된 기사 쓰는 기자들 꿀밤을 한 대씩 때렸으면 좋겠어요.”
지난달 LA 다운타운 한 건물에서 벌어진 한인 봉제업체 노동법 단속 취재 현장에서 만난 업주의 말이다. 경제부로 자리를 옮기고 처음 나간 취재에서 분위기 파악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뿔난’ 독자를 만나니 대답이 궁색했다. “저는 아닌데요”라고 얼버무리고 있는데 기자들 주변으로 봉제공장 업주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면서 취재 현장에서 ‘한인 봉제업계 이대로 좋은가?’ 즉석 토론이 벌어졌다.
봉제업체 업주들은 노동법 단속에 대한 신문 기사가 업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신문들이 봉제 업체들을 노동법 위반을 일삼는 악덕 업주로 매도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봉제 업자들도 노동법 지켜가며 사업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모든 노동법을 준수하면서 소매업자나 원청업자가 요구하는 생산단가를 맞출 수 없는 것이 하청 봉제업체들의 현실입니다. 원자재 가격과 임금은 계속 상승하는데 봉제 단가는 10년 전 수준이라는 것이 말이 됩니까?”라는 말에 기사거리 하나 잡았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취재를 나갔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또 다른 업주는 “의류 업체에서 요구하는 모든 것을 맞춰가며 중간 마진을 제하고 났더니 한 벌에 맥도날드 커피 1잔 값도 안 되는 생산가격이 나왔다”며 허탈해 했다. 노동법을 지키면서 업체를 운영하기는 불가능하냐는 원초적인 질문을 던졌다. “노동법 단속에 적발되고 나서 피스(piece)당 주던 임금을 주급으로 바꿨습니다. 주급을 받는 종업원들이 하루에 12번씩 화장실을 가더군요. 종업원들의 늑장 때문에 도저히 생산량을 채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피스당 임금으로 돌아갔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20년 가까이 봉제업체를 운영했다는 한 업주는 “예전에는 한인사회 경제가 봉제 업계에 달렸다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봉제와 의류 쪽에서 돈이 돌아야 한인타운 경제가 살아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한인 대형 의류업체들이 커나가는 외형적인 성장 뒤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봉제 업체들의 희생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며 전업을 고려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산업구조상 한인 봉제업계의 침체는 피할 수 없다고 말한다. 노동법 적발은 침체기의 봉제업계를 바짝 위축시키는 치명타가 된다. 노동법이 엄격한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하면서 후발주자 이점을 지닌 중국이나 베트남의 값싼 노동력을 이길 수 있는 재간은 없다. 고급화와 생산단가 현실화를 통한 체질개선이 없으면 봉제업계의 먹구름은 쉽게 거치지 않을 것 같다. 한인 경제의 큰 축을 차지하는 봉제업계가 지쳐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돌아서는 마음이 무거웠다.
김연신 경제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