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모시, 광목 바지 저고리/ 까망 고무신/ 조그만 노래들/ 왕진가방 속에 가득 넣어/ 세상 속 이곳저곳 달려가/ 노래로 보듬고 어루만져주며/ 행복주사 놓아주는/ 어릿광대 노래의사.”
맨흙을 쥐어짜면 그 소리가 나올까, 풀잎을 쥐어짜면 그 소리가 나올까. 소리꾼 장사익에게 어느것 한가진들 소리(노래)가 아니랴. 붓펜으로 쓴 ‘서기 이천육년 가을날, 한복 다림질을 하여 옷가방에 넣으며’란 후렴이 붙은 그의 글은 마디마디 소리다. 흙으로 빚고 풀잎에 버무린 노래다.
지난해 가을 한국의날 민속축제 때 극장(SF 팰리스 오브 파인 아츠)에서 야외(SF 유니온 스퀘어)에서 바로 그 차림으로 ‘찔레꽃’과 ‘국밥집에서’를 부른 인연을 잊지 않고 간간이 안부를 전해오는 그가 이번에 또 얼큰한 편지를 보내왔다. 오는 12월1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사람이 그리워서’란 이름표를 내걸고 벌이는 장사익 소리판 안내를 겸한 쪽지는, 심지어 원숭이 침팬지도 안락의자에 기대어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는 듯한 요즘 세상에, 군불 땐 구들방에서 엎드렸다 쪼그렸다 붓펜으로 손수 한자한자 썼음직한 품세가 물씬하다. 그래서 읽기도 전에 우선 따습고 반갑다.
“문득 하늘을 보니 세상만사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그 생각함은 어디서 시초하여 오는 것일까, 곰곰 생각해보니 ‘그리움’이었습니다.” 첫머리를 이렇게 장식한 소리꾼 장사익의 가슴 어디엔가 지난해 가을 샌프란시스코에서 맺은 인연도 자리하고 있으렸다.
그는 이어 “연초 2, 3개월 지독한 감기몸살로 늦어진 인사가 낙엽지는 가을인사가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전반기에는 지방 서너곳에서 소리판을 열었고…노래할 때마다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늘 미진함에 후회와 반성 속에 살고 있습니다…눈 내리는 12월10일(일)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라고 근황과 계획을 귀띔한다.
그는 또 그리움으로 시선을 돌려 “집앞 세검천의 청둥오리는 올여름 폭우로 휩쓸려간 제 짝을 그리며 오늘도 축 처진 깃으로 왼종일 서성대고 있습니다. 그리움은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라고 되새긴 뒤 “사람이 그리워서, 사람이 그리워서, 다섯번째 음반 12월공연 제목이 됐습니다. 유난히 힘들었던 여름 보내니, 가을 좋은 날입니다. 하루하루 높고 푸른 날 되십시오”라고 끝을 맺었다.
그는 우리를 저토록 그리워하는데 우리는 그를 얼마나 그리워했는가. 그런 생각에 잠기려니 문득 포개지는 또 한 생각. 국보소리꾼 장사익을 초청해 소리판을 벌인 뒤 가외의 감동몫 웃돈은커녕 약정된 품삯조차 제대로 안주고 떼먹은 이가 있으니, 북가주 말고 동부 어딘가에.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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