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국 민족은 단일 민족이라는 우월의식 때문에 다른 인종과의 결혼이나 혼혈아 그리고 타 인종에 대한 저항의식이 강하다. 그러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민족은 결코 단일민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100년간 원나라의 지배를 받아왔고 공민왕도 노국 공주와 결혼했다. 병자호란의 참패로 청나라에 끌려간 조선 부녀자는 50만 명이 넘었다.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더라도 환향녀로 몸을 더럽힌 여자라고 집에서 쫓겨나거나 수모를 당했다. 인조 임금은 ‘전쟁에 따른 불가피한 상황’임을 들어 왕명으로 지정한 개울(홍제천)에서 몸을 씻으면 과거를 묻지 않는다는 고육책까지 내 놓았다.
그뿐인가. 왜구의 침략을 받아 나라가 쑥대밭이 되고 많은 부녀자들이 잡혀가 욕을 당했다. 우리 나라 250개가 넘는 성은 모두 순수하게 한국인 피의 성뿐인가?
동족상잔의 6.25 전쟁으로 소련군과 중공군 그리고 유엔군이 우리 나라에 진격하면서 삼천리 금수강산이 국제공동묘지가 되었고, 우리의 엄마 누나들은 외국군에 능욕 당하며 살기도 했다. 6.25 이후 미군 주둔 지역에서 양공주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우리의 여성들의 멸시와 천대는 가슴 찢어지는 아픔이었다.
한국 주둔 흑인 미군과 결혼해 아들을 낳고 14개월만에 미국에 온 한국여성이 미국 와서 남편에게 버림받고, 피붙이 아들마저 양육할 능력이 없다고 빼앗긴 그녀가, 어떻게 살아남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지를 미리 짐작해도 그녀의 피와 땀과 눈물을, 그리고 설움과 멸시와 천대를 우리는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절망과 치욕, 처절한 외로움으로 목숨을 이어 갈 때, 어느 누가 한국여자라고 손 한번 잡아준 우리가 있었던가. 성공한 모녀가 세상에 알려지니 이제 와서 장한 한국의 어머니요 한국인의 피가 섞인 영웅이라고 악어의 눈물 같은 낯뜨거운 동정을 하는가. 우리가 언제부터 혼혈아, 해외 입양아들에게 그토록 알량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가.
이제 한국 어머니가 피와 땀으로 키워 논 혼혈 아들이 수퍼 보울 최우수 선수로 일약 영웅이 되었다. 하인스 워드의 팔뚝에 한글 문신이 새겨진 사진과 함께, 한국 언론들은 한국인 혼혈아라고 대서특필하고, 냄비 같은 근성으로 신문에 도배질을 하고 방송은 시끄럽다. 순진하고 근면하게 아들과 일 밖에 모르고 살아온 워드의 어머니를 들쑤셔 놓고 당혹스럽게 흔들고 있다.
우리는 과연 그들의 모자를 초청하고 영웅으로 풍선을 띄울 자격이 있는가. 우리는 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양심이 있는가. 흑인 혼혈아라고 그들 모녀 가슴에 숱하게 못만 박은 부끄러움밖에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회개하며 숨어서 조용히 박수를 쳐야한다.
혼혈아로, 입양고아로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우리의 피가 어찌 하인스 워드 뿐이겠는가. 그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과 한숨이 어찌 워드와 김정희 여인 뿐 이겠는가. 그들보다 더한 슬픔과 아픔이 있는 국제결혼가족, 입양 고아가 왜 없겠는가. 성공한 사람의 과거는 비참하면 비참할수록 아름답고, 실패한 사람의 과거는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비참하다고 했다. 그러기에 하인스 워드 모자는 그 성공이 값지고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한국 땅 안에서 사는 삶만 한국 사람이요 동족이라는 낡은 관념을 버려야 한다. 애국자는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해외동포 중에도 있다. 세계화 시대에 같은 핏줄, 단일 민족은 역사 교과서에나 있는 이야기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한국말 하고, 한국글 쓰고, 한국의 얼이 몸 속에 씨가 되어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 있든지, 어떤 피부 색깔이든지, 모두 한국인이라는 넓은 가슴으로, 내일의 한국을 내다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하인스 워드 어머니의 눈물은 우리 민족의 역사요, 눈물이었다.
윤학재 <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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