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한다’(노벨상 수상작가 한강). 수많은 글들이 넘쳐나는 요즈음에 이런 화두(話頭)를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그게 뭐지, 물리학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말인데…’ 작가는 80년 5월 당시의 진실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겨우 8살이었다. 그런데 그해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한강에 의해서 숙명처럼 2024.12. 3일 광주가 되살아 났다. 그랬다. 어린 여덟 살의 기억, 치열한 기억들은 작가가 아니래도 어제처럼 환하게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이다.
2024. 12. 3일 계엄선포를 하는 그 짧은 순간에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온 국민들의 뇌리를 스쳤던 것은 ‘5.18 광주’였다. 모두가 동시에 떠올린 외마디는 ‘미쳤다’ 라고 한다. 정치인은 물론, 언론, 시민, 심지어 계엄에 투입된 경찰, 군인들까지 역사적 역진(逆進)을 단호히 멈추어 세웠다. 한밤중 여의도 상공을 오롯이 뒤덮은 맑디 맑은 그 정신, 계엄은 안돼, 살인, 공포, 장갑차, 계엄군, 체포, 언론탄압, 독재, 행방불명, 금남로, 선연한 45년전의 그 날을 동시에 떠올렸던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밝은 대낮 선혈이 낭자하고 어지러웠던 금남로가 아니라 서울 시민을 비롯한 전국민들이 TV앞에서 꼬박 밤을 새워가며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구상에는 지금도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생물들이 속절없이 죽는다. 아프리카, 아랍, 유럽,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살상들은 어느 하나도 그냥 지나칠 일들이 아니지만 단순히 희생자 숫자로만 비교할 수는 없다. 2002.9.11 미국의 뉴욕 한복판에서 벌어진 테러로 2,977명이 희생된 것과도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광주의 희생과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정의와 저항’의 개념이 정지되어 버린 전쟁터일 뿐이다. 광주도 그럴뻔 했다. 아직까지도 그 찌꺼기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지만 역설적이게도 12.3 내란으로 말미암아 광주의 의미가 더 뚜렷하게 국민들 가슴에 새겨지는 계기가 되었다. 죽은자가 산자를 구하고,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는 막연했던 실체들을 손에 잡히듯 확인한 것이다.
1971.4.25 선거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더 이상 않겠다’ 고 공언했다. (대통령 기록물) 그러나 1972. 10. 17. 박정희는 3선을 하도록 헌법을 고쳐버린다. 이게 첫번째 친위쿠데타다. 친위 쿠데타 개념조차 헷갈리는 분들이 꽤 많아서 정리해 드리자면 집권을 하고 있으면서 그 집권을 더 강화하려는 것이 친위 쿠데타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이 2번째 친위 쿠데타인 것이다. 그리고 선거의 낭비를 막겠다고 체육관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1/3을 뽑는 것이 핵심이었으니 영구집권이 가능토록해 버렸던 것이다. 그는 선거 때 거짓말을 했고, 우려했던 유신(維新)체제를 선포한 것이다. 국민들이 이 때부터 비상조치의 후속 개념인 계엄(戒嚴)이라는 말을 처음 듣게 된다.
서울법대 나와서 중앙대 교수로 있던 갈봉근(葛奉根)은 유신헌법이라는 걸 만든다. 당시 학생들은 한 국가에서 2가지 헌법책으로 헌법공부를 해야 했다. 1979.10.26 박정희가 피살되자 9차까지 이어지던 비상조치가 해제되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아다시피 불과 몇달도 지나지 않은 1980. 5.17일 전두환에 의하여 없어진 줄 알았던 비상계엄이 또 되살아 난 것이다. 그리고 그 군사정권은 1991년까지 10년을 지속하게 된다. 거의 20년간을 ‘계엄치하’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금의 50대 이하 세대는 책과 화면으로만 보니 덜 실감나겠지만 50대 이후는 계엄이라는 게 어떤 시대인지를 아는 것이 정상이다. 불행하게도 계엄이 뭔지를 모르게 국민들을 통제하는 것이 바로 계엄이 노렸던 바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60대 이상의 세대는 실감이나 체감할 줄도 몰라야 했고, 3권을 장악하고, 언론을 통제해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도 모르게 했고, 그게 정상인줄 알고 살았던 사회가 바로 계엄 치하였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반대가 있는 것은 허용되지도 않았다. 그런 계엄에 대해서 정의와 저항의 정신으로 전국이 숨죽여 있을 때 목숨을 건 시민들이 광주에서 일어났고, 수많은 희생을 치뤄야만 했다. 마치 12.3일 밤 여의도에 모인 서울 시민들처럼…
5.18은 광주에서 시작되었지만 이제 5.18은 광주만의 것도 아니요, 호남만의 것은 더욱 아니며, 대한민국을 넘어 세상의 빛이 되었다. 2017년 촛불혁명때를 기억하는 미국도 부러워하는 민주주의 회복국가의 역사의 서막을 장식하게 된 것이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모윤숙 1950. 8월) 작가는 친일행위를 했다. 당시 시대정신은 ‘독립’이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말을 하겠는가만 나라를 지킨다는 숭고함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웠던지 뒤늦게나마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런 시(詩) 썼는지 모르겠다.
침묵은 때로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담아낸다. 더군다나 시대정신이 투영되어 희생된 죽은 자의 침묵은 바위처럼 무겁다. 45년전 5.18이 이렇게 나라를 되살려 놓을 것이라는 것을 필자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 동안 선거 때마다 헌법전문에 싣겠다는 말들이 공허하기만 했다. 이번이야 말로 허허로울 것 같지 않다. 2025. 5월이 특별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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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클락스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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