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춘선 <알렉산드리아, VA>
휴대폰 전화가 맹렬히 울려댄다. 저녁을 짓다 말고 핸드백을 뒤져 전화기를 귀에 대고 ‘Hello, 여보세요’를 동시에 외친다. 그러자 “저어 안녕허십니까, 여사님, 지로 말씀 드릴 것 같으면, 지는 최이~엉복이라고 헙니다” 쉰 듯한 느린 목소리의 어눌한 사투리가 정겹게 전화선을 타고 들려온다. 묻지 않아도 나이 드신 할아버지임을 알 수 있다. “아~예,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한껏 친절하고 상냥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어 대답해 드린다. 그래야 사람들이 거리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에~ 또, 지가, 거 뭣이냐”’ 에구, 이 할아버지 오래 끌게 생겼네, 직감이 온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을 듣고서야 전화하신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주관하고 있는 ‘예진회’에서 마련한 ‘사랑 나눔 한 마당’ 잔치에 오시고 싶으시다는 말씀이다. “아~그러세요. 그런데 할아버님 사시는 곳이 어디신가요?” “에~또 뭣이냐. 지는요, 아파트에 사는디요” “그러세요. 사시는 아파트가 어디인데요?” “버크에 있는 건디요” “그럼 버크 어느 아파트인데요?” 한참을 망설이시던 할아버님께서 “조금 있다 지가 다시 전화 걸면 안될까요? 가서 주소 좀 알아 오것습니다” 그러고서 전화가 끓어졌다.
부지런히 부엌으로 가서 다시 저녁준비를 하고 한참 저녁을 먹는데 할아버지께서 다시 전화를 주셨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 읽어 주시는 주소는 다름 아닌 우리가 행사 준비중인 아파트 주소였다. “할아버지, 8월 26일 목요일 낮 12시까지 아파트 아래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성질 급한 나는 입에 오토바이를 단 것 같이 일사천리로 말을 마친 후 할아버지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의 실수였다. 할아버지께서 말 빠른 내 말을 알아들으실 리 만무하다. 하는 수 없이 다음 날 찾아 뵙고 잘 말씀드리기로 하고서야 전화기에서 해방 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부지런히 준비를 하고 아파트로 들어서니 할아버지께서 로비에 앉아 날 기다리고 계셨다.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내 소개를 드리자, 할아버지께서 대뜸 하시는 말씀이 “여사님, 지가 올해 여든 둘이지만 나이는 들었어도 기운은 장사입니다. 혹시 지가 도와 드릴 일은 없을까요. 돈은 한 푼도 안 받을 테니 지발 절 좀 데리고 다니시면서 일 좀 시켜 주십시요” 아, 어쩐단 말인가. 얼마나 외로우시고 답답하셨으면, 처음 보는 나에게 저렇게 애원하실까 생각하니 이 다음 나도 나이 들면 저 할아버지처럼 삶이 답답해지면 어쩌나 걱정부터 앞선다.
“할아버지, 여사님이라고 부르시지 마시고 그냥 자매님이라고 불러주세요. 뭘 원하시는지 충분히 알겠습니다. 다음에 할아버지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때 모시겠습니다”라고 위안을 드렸다. 며칠 후 행사장에서 말끔하게 차려 입은 할아버지께서 마이크를 들고 ‘목포의 눈물’을 열창하시며 재미있는 몸 동작으로 춤을 추시는 바람에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셨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는 나의 손을 꼭 잡고 “여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즐겁게 놀아 본 지가 언제인지 모릅니다.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하신다. 에구 또 여사님이야. 너무 즐거워 감격해 하시는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나오는 나의 등 뒤로 할아버지의 시선이 강하게 꽂혀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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