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국 <경제학 박사, 전 서강대 경상대학장 .포토맥, MD>
내 고향 전남 강진은 줄다리기로 유명하다. 전 군이 동서 양편으로 갈라져서 음력 정월 10일날 시작하여 보름날까지 5일간 계속되는데 그 규모나 행사의 화려함과 다채로움에 있어 이웃 군의 어느 곳도 비교할 수 없었다.
당시 부유한 집들은 가을이 되면 겨울에 땔 나무들을 각자 소유의 산에서 벌목하여 집 근처에 쌓아놓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그 나무들의 크기가 그 집의 부의 척도가 되었다. 음력 정월이 되면 어린이들이 부유한 집을 찾아다니며 나뭇단을 묶었던 새끼를 걷어 가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이들은 “나무 주시오, 나무 주시오”하면서 새끼를 수집해갔다. 그들은 그 새끼로 조그마한 줄을 비벼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시작했고 이것이 동서로 갈라서 대전을 벌이는 시작이 되었다. ‘어린애들 줄다리기가 어른들 줄다리기로 커진다’는 말의 기원이 되었다.
음력 정월 열흘 줄다리기가 시작되는 날이 가까이 오면 동서 양 진영은 줄의 준비에 분주했다. 기계로 짠 새끼짐이 바리바리 들어오고 필리핀 마닐라 산 밧줄도 들어왔다. 양쪽 진영의 사람들은 줄을 비비기 위해 밤늦게까지 불빛 아래서 ‘도세라 도세라’하며 줄을 비볐다. 그 소리는 인근 마을을 새벽까지 울렸다. 이렇게 완성된 줄은 고 근처의 크기가 직경 1m 가까이 되고 길이는 약 50m 가까이 됐다.
결전날인 정월 열흘날이 되면 양 진영에서 다투어 화려한 출진식이 거행된다. 양 진영의 유지, 청년들이 머리에 조화로 장식된 고깔을 쓰고 색색의 비단으로 만든 마고자를 입고 줄의 고대목에 늘어선다. 설소리꾼이 맨 앞에 서서 선창을 하면 줄을 메고 가는 사람들은 ‘상사디여, 상사디여’하고 화답을 한다. 양쪽 줄이 시가를 동서로 갈라 놓은 분기점에 도달하면 ‘고싸움’이 전개된다. 양쪽 유지 청년들의 투지와 힘을 겨루는 장이다.
고싸움이 끝나면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끌려가는 편은 줄 위에 올라앉아 ‘돈 안주고 서창가, 돈 안주고 서창가’를 외치며 끌려간다. 저녁이 되면 줄다리기는 휴전에 들어간다. 줄은 가로수에 칭칭 감아놓고 감시하게 된다. 이대 부자집에서는 가마솥으로 밥을 지어 김밥을 만들어 이들에게 나눠준다. 날이 새면 줄다리기는 다시 전개된다. 정월 보름날 양쪽 분기점에서 승자 패자가 결정된다. 한편에서는 ‘간첩전’이 성행했다. 칼을 숨기고 들어가 상대방 줄에 칼로 흠집을 내 놓으면 거기서 줄이 끊어진다. 간첩이 발견되면 죽도록 매를 때려 석방했다.
줄다리기는 남성 전용이고 여성은 금물이었다. 여성이 줄을 넘으면 그 자리에서 줄이 끊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줄다리기는 매번 서쪽 승리로 끝났다. 한번은 동쪽이 승리를 거두었다. 승자는 응당 승리 행진을 시도했다. 승리 행렬이 압구재라는 조그마한 재에 도달하였을 때 재 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쪽 사람들이 인분을 행렬에 퍼부었다. 동쪽 사람들은 허둥지둥 돌아와서 추운 겨울인데도 찬물 한바가지 둘러쓰고 근처 대밭에서 대를 베어 대창을 만들어 들고 압구재로 달려갔다. 그러나 서쪽 사람들은 온데 간데 없이 없어져 허행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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