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규환 <퇴역 공군장교·엘리컷시티, MD>
1950년 7월 초순, 공산군 치하의 서울 배재 중학교 운동장에 인민군 대위 계급장의 여자 군관이 붉은 별 전투모에 소련제 권총과 검정색 가죽 장화를 신고 약 200여명의 여학생들에게 총기사용법을 교육하고 있었다. 뒷편에는 따발총으로 무장한 여자 인민군 전사들이 거만하고 위협적인 자세로 지켜보고 있었다. 여학생들은 단발머리에 앳되고 창백한 얼굴의 연약한 모습으로 모두가 서울시내의 여고생들이었다. 소위 의용군에 차출된 애송이 처녀들로 막 갈아입은 국방색 군복과 훈련화에 사제 혁대차림으로 엉성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당시 청소년 개구쟁이였던 우리들 친구 10여명은 순화동 동인민위원회 세포책인 애꾸눈 사파리에 이끌려 인민군 환영회에 동원돼 갔고 이미 대기중인 우리 또래 중고생 애들과 합류했다. 여자 인민군 군관의 지휘로 김일성, 빨치산, 인민군 군가를 합창했고 저네들의 황당무계한 무용담과 선전을 몇 시간이고 들었다. 그날 이후 동네 반동분자 및 미제 스파이 색출 신고를 강요받았고 저녁에는 군수물자 하역 등 노역에 동원되고 여러 번 미 공군기의 공습으로 중단 후 대피 등을 했던 것이다.
9.28 서울 수복 전투시 인민군은 시내 요충에 샌드백 참호와 지하도 등에 잠복, 완강히 저항했고 이 와중에 많은 청소년들이 강제 징집되어 끝내는 총을 잡은 채 포탄을 안은 양 또는 탄약 상자를 움켜잡은 채, 심지어는 땅에 묻은 탱크 속에 쇠사슬에 발목이 묶인 채로 죽어 많은 강제된 소년병이 희생당한 것이다.
낙동강 전투 초기에 김일성은 수안보에 내려와 모든 최고지휘관 및 막료 장군들은 긴급 소집, 그 동안의 승리를 치하하고 최후의 총공격으로 단숨에 부산함락으로 적화 통일을 완수할 것을 독려했다. 수안보는 고산 분지로 사방이 높은 준령으로 인민군 정예3사단 휘하 제 325 탱크 여단과 제 102 포 연대가 포진해 철통같은 경계 하에 전승 축하 및 총공격 전야제로 주지육림의 향연이 질펀하게 벌어졌다. 김일성을 위시 박성철, 김책, 김무정, 김일, 최강일, 최현, 오진우, 백광림 등 장수들이 회포를 풀었고 이 자리에는 전리품으로 끌려온 남한의 인기 여배우들과 포로로 잡혀온 국방군 연예단 소속 여가수와 무용수들이 기쁨조로 농락 당했고 기고만장해진 장수들은 마적단 본성의 야수로 돌변, 겁탈과 윤간으로 여자들은 초죽음을 당했으며 광란의 밤은 지새는 줄 몰랐다.
그날 이후 여자 의용군은 최전방으로 끌려가 간호, 취사, 내무, 통신, 연락, 정찰 등에 피난민 위장 전선 침투 적정탐색에 투입돼 전원이 사살되거나 병으로 죽었고 후퇴시 극소수는 태백산 지리산으로 패주해 유격대로 흡수되어 저들의 후방 내무 사역봉사 등으로 혹사당해 끝내는 병사하거나 숙청 사살되어 생존자는 전무했다.
6.25 전쟁의 최악의 희생양이 된 여자 의용군과 소년병에 대한 공식 기록은 전혀 없고 단지 전해들은 육성 증언과 비공식 자료를 토대로 참상을 기술하면서 민족의 이름으로 저네들의 극악무도한 반인륜 범죄 행위를 만천하에 고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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