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종규 <버지니아 거주>
한국과 미국 사이의 최초의 조약인 1882년에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 2항에는 ‘만일 열국(列國)이 체약국의 정부에 대하여 부당한 압박을 가할 때는 이 사실을 통고하면 체약국의 우호관계의 표시로서 체약국에 대하여 각각 최선의 조치를 강구한다’라는 조항이 있다. 1905년 일본이 조선정부를 압박하여 강제적으로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고 외교권을 강탈하자 고종황제는 미국과의 이 조약을 상기하고 미국에게 도움을 청하려 하였다. 고종황제는 헐버트라는 사람을 밀사로 임명하여 미국에 보냈는데 헐버트는 1905년 11월 22일에 미국 국무장관 루트(Elihu Root)를 찾아가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 2항을 내세우며 도와달라 하였다. 그러나 루트는 아직 내용을 모른다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그 후 12월 11일에는 주불 한국공사 민영찬(閔泳贊)이 헐버트와 협의한 후 다시 국무장관에게 애원하였으나 역시 거절당하였다. 그뿐 아니라 이러한 여러 가지 교섭내용을 미국 국무장관은 주미 일본공사에게 일일이 알려 주었다. 한편 조선정부는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미국공사 알렌에게 요청하여 미국정부를 움직이려 하였으나 일본이 미국에 보호조약의 내용을 통지하자 미국은 즉시 알렌 공사를 소환하고 공사관도 제일 먼저 닫아 버렸다. 이로써 조미수호통상조약에 담겨있던 미국과의 약속은 휴지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기 전 미국은 이미 1905년 7월 29일 전쟁장관 타프트(William Taft)를 시켜 일본수상 가쓰라와 만나, 미국이 필리핀을 먹는데 일본이 묵인하는 대신 일본이 한국을 먹는데 미국이 묵인한다는 내용의, 소위 타프트-가쓰라 비밀 협약을 맺었던 것이었다. 그 후 미국은 일본의 조선침략을 단순히 묵인만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왔다. 미국은 이렇게 한국을 배신하였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일 그때 미국이 한국을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통치를 면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후 남북의 분단도 없었을 것이며, 6.25 전쟁도 없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전리품으로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고 싶었지만 소련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남한만을 차지하였다. 6.25 전쟁이 터지자 미국이 즉시 참전한 것은 한국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전리품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이 한국인의 자유를 보호할 마음이 있었다면 한국을 일본 식민통치의 고통 속에 밀어 넣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과거나 지금이나 남의 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리며 싸우는 착하고 은혜로운 나라가 아니다. 지금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이니 인권침해국이니 하며 비난하지만 그렇게 말할 자격이 없다.
역사가 이러한데도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의 약속을 내세워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이라크 추가파병을 강행하려 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지나친 짝사랑이다. 스페인은 이미 파병했던 군대도 철수하는데 말이다. 미국과의 약속만 중요시하고 자국민의 뜻을 중요시하지 않는 정부는 곤란하다.
(jkhwang1@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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