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희 미주본사 논설위원
인간의 날고 싶은 욕망, 비상의 꿈은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루스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이카루스는 천하 제일의 손재주를 타고났던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들어준 날개를 달고 창공을 날아오르는 황홀함을 맛본다.
그러나 비상의 기쁨은 잠깐, 하늘을 날수록 강해지는 ‘더 높이’의 유혹에 눈이 먼 이카루스는 태양에 너무 근접했다가 밀랍으로 붙여 만든 ‘가짜 날개’가 녹아 내리면서 바다로 떨어져 죽고 만다. 도전, 과욕, 그리고 추락의 신화이다.
남가주에서 지난 몇 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비상하던 젊은이들이 추락했다. 성능 좋게 보였던 그들의 ‘날개’는 가짜였다. ‘투자의 귀재’‘차익 거래의 귀재’라고 불렸던 30대의 1.5세 청년들이 공교롭게도 같은 시점에 동반 추락하면서 한인사회가 뒤숭숭하다. 한국에서 옵셔널 벤처스 코리아라는 회사를 차린 후 4천만달러 상당의 투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연방수사국에 체포된 김경준씨, C+ 투자회사 대표로 거의 억대의 돈을 가로챈 혐의로 수배된 찰리 이씨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공한 젊은 사업가의 전형이었다.
이들 LA의 이카루스들이 추락하면서 그들이 하늘에서 별이라도 따다 줄 것으로 잔뜩 기대했던 투자가들이 집단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C+ 투자 사기 피해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진 LA 다운타운 의류상가는 요즘 분위기가 말이 아니라고 한다. 한 의류상가 주인이 전하는 말이다.
“작년 언제부터인가 미스터 리가 너무 잘 나가더군요. (그가)부스러기 돈은 안 받고 큰돈만 받아준다며 돈 있는 사람들끼리 쑥덕공론을 하곤 했지요. 그 사람들이 지금 줄줄이 물렸어요. 다들 장사는 뒷전이고 대책 논의하느라 술렁술렁해요”
의류상가에서 ‘미스터 리’로 통하는 찰리 이씨는 돈을 물 쓰듯 하기로 유명했다. 투자 고객들에 대한 초호화판 접대를 비롯한 갖가지 소문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떡볶이 에피소드.
교외지역에 사는 그가 한 밤중에 떡볶이가 먹고 싶으면 단골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해서 한인타운에서부터 배달을 시킨다는 것이다.
“그 택시 비가 얼마겠어요? 이런 저런 일로 택시를 자주 이용했는데 한달에 택시기사에게 가는 돈이 4,000-5,000달러였다고 해요”
사실 무근인, 혹은 과장된 소문일수도 있지만 이런 소문들이 나오게 된 배경은 우리 보통사람들과는 단위가 다른 그의 돈에 대한 감각일 것이다. 몇 십만달러 정도로는 투자자로 감히 명함도 못 내밀었다는 그의 ‘부자 클럽’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기본적으로 두 가지 요인 때문이라고 본다. 우선은 한인사회에 갈곳 모르는 돈이 많이 있다는 말이다. 태어났지만 호적에 오르지 못하는 사생아 같은 돈들이다. “방석 밑에 깔고 있어야 할 돈들이 있다는 걸 알고 그가 미끼를 던진 것이다”는 해석이다.
다음은 욕심. 하늘을 조금 날아보니 더 높이 날고 싶은 과욕이다. “너무 쉽게 돈 버는 재미에 모두 판단력이 흐려 진 것이다”고 한 의류상가 주인은 풀이했다.
“투자금에 대한 이자가 워낙 좋았으니까요. 새 사업 시작하려고 비즈니스 판 돈을 그대로 거기 갖다 넣은 사람들도 있어요”
돈도 수명이 있다. 땀 흘려 번 돈, 용도가 분명한 돈은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재화로서의 제 수명을 다 한다.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고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복이 되는 돈이다.
그러나 사생아처럼 출생도, 존재의 근거도 불분명한 돈은 제 수명을 누리기가 어렵다. ‘은행에 넣을 수도, 마냥 쌓아 둘 수도 없는’ 기구한 운명의 돈이다. 그런 돈을 도깨비 방망이로 두드리듯 불려준다는 데에 모두 현혹된 것이 이번 투자 사기 사건이다. 그 엄청난 돈이 재화로서의 역할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공중으로 사라져버렸다.
돈에 눈이 머는 사람이 있을 뿐 눈 먼 돈은 없다는 것이 사기사건이 주는 교훈이다. 노력 없이 들어온 돈은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치르게 만든다. 나의 땀과 시간이 들어가지 않은 돈은 복이 아니라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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