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본사 주필>
박정희가 무덤에서 깨어난다면 얼마나 놀랄까. 자기 딸이 야당지도자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경험을 살려 “야당은 이렇게 하는 법이야”하고 충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자는 몇 년 전 박근혜씨를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인터뷰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 대통령후보감으로 약간 말이 있을 때였다. 말씨가 부드럽고, 우아한 매너에 부정에 물들지 않은 깨끗한 정치인 냄새가 났다. 정계에 몸담고 있는 여성들은 하나 같이 옷 못 입기로 유명한데 그의 복장은 매우 세련되어 보였다. 그러나 대통령후보감으로는 ‘아니올시다’라는 인상을 받았다. 정국이나 경제난국에 대한 질문에 너무나 상식적인 수준에서 대답을 했고 무엇보다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일가견이 부족 했다.
사람이란 환경에 따라 달리 보이는 법이고 특히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인상이 180도 달라질 수 있다. 요즘 TV 뉴스에 비친 박근혜씨의 모습은 내가 만났던 그 박근혜씨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들을 하고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박근혜씨의 야당 총수로서의 등장은 한나라당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 우먼파워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었음을 알리는 역사의 장이다. 더구나 또다른 야당인 민주당의 선거책임자에 추미애씨가 선출되고, 3당 대변인 자리를 여성들이 차지하는가 하면 전국구 비례대표 1번에 각 당이 앞다투어 여성을 지명하는 것 등은 보통 변화가 아니다. 요즘 한국 정국을 삐딱하게 표현한다면 ‘남자들은 없다’는 제목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왜 한국 정계에 여성진출 붐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 새로운 물결의 밑바닥에는 ‘변화’를 목마르게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이 깔려 있다. 기성 야당 정치인들이 지금까지 변화를 외쳐왔지만 말만 있고 행동이 없었던 것에 대해 국민들은 식상할 정도가 아니라 정떨어질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지금 이 시대의 화두는 변화다. “바꿔, 바꿔, 모두 다 바꿔!”라는 젊은이들의 구호가 섬뜩한 데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어떻게 되겠지 하고 미적거리다가 뜨거운 맛을 보게 된 것이 요즘의 한국 정치다. 민주투사였던 김영삼, 김대중씨가 집권한 후 제대로 개혁했더라면 어떻게 노무현 시대의 등장이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의 촛불데모와 여성들의 야당지도자 등장은 3김 시대의 개혁 실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세력 대부분이 이회창씨가 당선될 것으로 오판한 이유도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심 읽지 못하기 콘테스트’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거울에 비친 어제와 오늘의 나의 모습에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10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는 좀 다른 모습이고 20년 전에 비하면 완전히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다. 변화란 그런 것이다. 한국에는 10년마다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60년대의 4.19혁명과 5.16쿠데타, 70년대의 유신과 박정희 피살, 80년대의 신군부 쿠데타. 90년대의 민간정부, 그리고 2000년대의 진보세력과 우먼파워 등장이 한국의 변화 주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여성들의 본격적인 정치무대 등장은 정치뿐만이 아니라 직장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우먼파워를 불러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것이다.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대로 나간다면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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