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화 관광부 이창동 장관이 영화 감독으로 지난해에 LA를 방문했을 때 만난 적이 있다. 이 장관은 팜스프링스 영화제에 출품되었던 ‘오아시스’(2000년작) 시사회 참석 차 왔었다. 이 작품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비롯해 5개 부문에서 상을 휩쓸고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 부문에 한국 대표작으로 선정된 수작이었다.
그 당시 한인들은 한국 영화로서는 처음으로 ‘오아시스’가 아카데미상 수상 후보에 오르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 장관의 생각은 달랐다. 이 영화는 “일반 영화팬들에게 흥행성이 없고 무척 보기 힘든 작품이기 때문에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였다. 이 장관의 예측대로 ‘오아시스’는 후보작에 오르지 못했고 LA에 있는 주요 극장에서 상영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 한국에서 1,000만명 관객 동원 기록을 세운 ‘실미도’(감독 강우석)와 1,00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는 어떠한가. 이 영화들은 한국에서 흥행에 대박을 터뜨리면서 일부 한국 언론들은 할리웃 진출을 기정 사실화했으며, 주요 영화 배급사를 통해 미 전역에 배급될 것처럼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주 한인들은 ‘오아시스’보다 더 많은 기대를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에 걸고 있다.
이에 부응이라도 할 듯이 ‘태극기 휘날리며’를 제작한 ‘쇼박스’사의 해외 마케팅팀은 거의 한달 동안 LA에 머물면서 할리웃 영화 배급사 관계자들을 만났고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에서 시사회도 가졌다. 실미도 팀도 ‘아메리칸 필름 마켓’에 참가해 마케팅을 벌였다.
그러나 미 진출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태극기 휘날리며’ 관계자들은 ‘아메리칸 필름 마켓’이 끝나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지만 별다른 진척 상황이 없었던지 한국에 가서 협상을 계속할 것이라는 말만 남기고 지난주 귀국했다.
미주요 배급사들이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를 경쟁적으로 구입하려고 했으면 지금쯤은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 배급사측이 한국 영화사에서 원하는 조건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미루어 짐작된다.
미 배급사들은 이 영화들이 한국에서는 대박을 터뜨리기는 했지만 한국의 역사적인 배경과 한국 배우들을 잘 모르는 미국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흥행성’이 있을지를 놓고 고민 중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한국에서 히트를 쳤던 ‘집으로’ ‘쉬리’ 등의 영화들이 ‘흥행성’이라는 문턱에 걸려서 미주요 배급사들의 배급망을 타지 못하고 극소수의 극장 상영에 그친 것과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반대로 미 배급사에서 흥행성을 인정받아 미주요 도시들의 극장에서 개봉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여하튼 이 시점에서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가 미주요 영화사에서 배급이 ‘거론’될 정도로 미국 내에서의 한국 영화 입지가 높아졌다는 점에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최근 몇년사이 수준이 높아진 한국 영화들이 미국의 영화계를 계속 노크해 왔기 때문이다.
이미 미주요 영화사들은 ‘조폭 마누라’ ‘엽기적인 그녀’ ‘가문의 영광’ 등을 비롯해 상당수의 한국 영화 리메이크 판권을 샀고, 최근에는 유니버설 필름이 ‘올드 보이’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는 등 계속에서 리메이크 형식으로 팔리고 있다.
다행히 ‘태극기 휘날리며’나 ‘실미도’가 이번에 미주요 영화 배급사를 통해서 배급되면 경사이지만 소수 영화관에서의 개봉으로 끝난다 해도 전혀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미국 시장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바람은 벌써 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주요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빅 스크린으로 볼 수 있을 때가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문태기
특집 1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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