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본사 주필>
신문을 만들다보면 마감시간 때문에 아주 급해질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케네디 대통령이 달라스에서 저격 받은 순간 등이다. 병원 응급실로 달려가 긴급수술을 받는 모양인데 잘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회생불가능 쪽인지 알 길이 없다. 시간은 자꾸 지나가고 마감시간은 다가오는데 신문발송을 언제까지나 미룰 수도 없고 그렇다고 ‘케네디 대통령 피격’으로만 내보내기에는 그 결과가 너무나 엄청난 뉴스다. 이럴 때 신문은 케네디 대통령이 회복된 경우와 숨진 경우 등 두 종류의 판을 짜놓고 기자의 현장 보고를 기다린다.
이런 큰 사건이 주말에 일어나면 ‘타임’이나 ‘뉴스위크’ 같은 주간 시사지는 죽을 맛이다. 월요일에는 전국 독자들에게 배달되어야 하는데 우체국이 거기에 맞추어줄 리가 없다. 그렇다고 문제의 뉴스를 빼고 편집하면 1주일이나 뒤로 밀려나게 된다. TV 방송도 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취재기자와 중계차가 수화를 하거나 색깔 있는 손수건을 흔들어 표시한다.
지난 주말 맨해턴 법정에서 열린 마사 스튜어트 재판에서 이같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TV 뉴스를 본 사람들은 기자들이 문밖으로 달려나오면서 빨간 스카프나 손수건을 흔드는 기이한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빨간 손수건은 유죄, 초록색 손수 건은 무죄를 의미한다. “마사 스튜어트 유죄!”.
마사 스튜어트는 누구인가.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기업가이고, CBS-TV에서 매주 요리 강습하는 우아하게 생긴 바로 그 여성이며, K마트에 가면 각종 식탁용 기구가 그녀의 이름을 로고로 쓰고 있고, 여성 인기잡지 ‘리빙’(Living)의 창업주며 무엇보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억만장자다. 자가용 제트기와 요트를 갖고 있고, 호텔에 들었다 하면 1,500달러짜리 스윗룸에만 머물고, 1,000달러하는 미장원에 다니고, 3,000달러나 되는 드레스를 몸에 걸치고 다니는 62세의 멋쟁이 레이디다. 폴란드계 이민으로 고생 끝에 자수성가하여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어낸 미국 여성들의 우상이다. 무엇보다 성격이 안 맞는 남편과 이혼한 후 나 보아란듯이 통쾌하게 성공한 이혼여성 재기의 본보기다. 그녀가 감옥에 간다는 것은 미국인들에게는 상상이 안될 정도다. 돈 있으면 살인도 무죄로 만들 수 있는 미국에서 억만장자인 마사가 주식문제로 감옥에 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심슨 케이스가 있지 않은가.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마사는 배심원들로부터 미움을 사 유죄평결을 받은 것 같다. 그녀는 재판이 진행되는 지난 2년간 유능한 변호사를 내세워 한번도 증언대에 오르지 않았고, 검찰이 타협안으로 제시한 20만달러 벌금형을 한마디로 거절했으며, 끝까지 자신의 진술(임클론 주식이 60달러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팔게 했다는 브로커와의 합의)이 진실임을 주장했다. 내부 정보를 이용한 거래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은 항상 엉뚱한 데서 터지는 법이다. 브로커 보좌관이 자신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를 조건으로 그녀가 주식 값이 떨어지는 것을 브로커로부터 사전연락 받고 급히 처분했으며 경찰조사 때 입맞춘 내용들을 다 불어버린 것이다. 급히 처분해서 그녀가 얻은 이익은 불과 5만달러이며 억만장자가 푼돈 아끼려다 패가망신한 셈이다. 거짓말한 것이 내부거래보다 더 큰 죄가 되었다. 무엇보다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고 경찰에 자신 있게 진술한 내용이 유죄의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변호사 없이 경찰에게 진술하는 것은 스스로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피의자 권리보호 제1조를 그녀의 오만이 파기한 것이다.
돈 많은 사람이 게걸스럽게 “돈, 돈, 돈”하다가 낭떠러지로 떨어진 것이 ‘마사 스튜어트 사건’이다. 부자에게 과욕은 독약이라는 것을 일깨워준 본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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