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엄마를 너무 자상하게 돕는 게 꼭 좋은 것만도 아니에요”
한 주부는 요즘 친구가 받을 충격에 지레 가슴이 아프다. 친구의 아들 K는 싹싹하기로 이웃에 소문이 났던 아이였다. 무뚝뚝한 보통 사춘기 사내아이들과 달리 K는 이야기도 잘 하고 다정다감해서 엄마를 늘 흐뭇하게 했다. 손님 초대가 있는 날이면 음식 장만부터 식탁 준비까지 빈틈없이 엄마를 돕곤 했다.
그런 K에 대해 최근 또래들 사이에 소문이 돌았다. 대학에 입학한 후 K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밝혔다는 것이다. 소위 커밍 아웃이다.
“K의 친구들은 다 아는 데 아직 그 부모는 모르는 것 같아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얘기를 들으면 부모 심정이 어떨까요?”
연말 연시는 대학으로 진학해 집 떠났던 자녀들이 돌아와 모처럼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즐거운 때이다. 그런데 때로 이때 청천벽력 같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대개 대학에 입학해 부모 곁을 떠났을 때이기 때문이다. 부모 슬하에 있을 때는 억제하고 숨기다가 집을 떠나 자유를 누리면서 자신의 성적 ‘정체’를 스스로 확인하기도 하고 밖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미국사회에서는 그 숫자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친구가 동성애자라고 밝혀도 또래 친구들은 더 이상 놀라지도 않는다. 밸리의 주부 B씨는 며칠 전 12학년 딸의 태도에 어안이 벙벙했다. 지난 해 학교 댄스 파티 때 파트너였던 백인 남자아이가 대학 입학후 커밍 아웃을 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 사실 자체 보다 그 소식을 전하는 딸의 태도.
“그 남자아이의 보이 프렌드를 만났는데 둘이 아주 잘 어울리더라는 거예요. 그리고는 대학가서 커밍 아웃한 친구들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줄줄 말하더군요”
미국에서는 며칠전 뉴저지를 포함, 5개주가 동성애 커플에 대해 부부에 준하는 권리를 인정할 정도로 동성애를 수용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한인사회 역시 더 이상 ‘동성애’가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90년대 한인 동성애자 모임이 만들어질 정도로 숫자가 적지 않다. 하지만 1세에게 자녀의 ‘동성애’는 여전히 ‘최악의 악몽’이다.
자녀가 동성애자라는 고백을 들었을 때 부모들의 첫 반응은 자책감. “우리가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라며 가슴을 친다. 부부 맞벌이하느라 아이들을 내버려 둔 것, 대학을 멀리 보낸 것, 혹은 미국으로 이민 온 것 자체를 모두 후회한다.
동성애는 선택이 아니고 부모가 애쓴다고 고쳐질 일도 아니다. 한인사회에서는 동성애자 본인보다 그 부모들이 겪는 고통이 너무 크다. 부모들이 서로 아픔을 나누고 위로를 받을 대화의 장이 필요하다. <권정희 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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