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람.사람들
▶ 타이틀만 36개...다음목표는 ‘커뮤니티 센터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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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러싱을 다니다 보면 유난히 분주한 한인을 볼 수 있다. 마치 산신령 같은 모습의 변천수(65. 플러싱 거주)씨다.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를 가는지 늘 플러싱 한인타운을 무대로 하루종일 바쁘게 오고 간다. ‘플러싱의 마당발’이라고나 할까? 안가는 데가 없이 그는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새벽부터 밤까지 무엇을 하는지 부지런히 다닌다. 그는 한 순간도 무엇을 하지 않으면 못 베기는 사람이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기질이라고 해야 할까, 못말리는 팔자라고 해야 할까.
그는 오늘도 아침 7시부터 영어강의 하랴, 사람 만나랴, 무엇을 또 하려는지 커뮤니티 보드, 그리고 경찰관계자를 만난다. 이어 오후에는 한인사회에서 요즘 바람이 불고 있는 플러싱 타운내 커뮤니티 센터 건립 관련 일을 하느라 정신 없다. 전화통을 한참 붙잡더니 무언가 서류를 정리하고 나서 또 다시 예고된 저녁모임을 향해 하던 일을 멈추고 부랴부랴 뛰어나간다. 그는 무슨 일이라도 일단은 저지르고 나서 성공을 향해 맹렬히 뛰는 사람이다.
누가 그걸 시켜서 할까. 좋아하지 않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무조건 덤비는 바람에 반대에도 많이 부딪쳐 혼자서 일 당 백으로 하는 일도 많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서 욕도 많이 먹는다. 어쨌거나 그는 커뮤니티에서 누구보다 벌린 일이 많았고, 단체 활동도 어느 사람보다 많이 했다. 그 결과 개인적으로 보람도 많이 느꼈고, 음으로 양으로 커뮤니티에 끼친 영향도 적지 않다. 누가 뭐래도 항상 벌린 일마다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으로 최선을 다한다. 때문에 그가 벌린 일들이 모두 다 성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별로 없다.
남들이 돈을 벌 때 그는 이 천성적인 끼(?) 때문에 이민온지 40년이 넘었어도 벌어놓은 돈도 많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그는 항상 만족하며 산다. 덕분에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다. 이는 아마도 밥벌이 쪽보다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다간 선친 수주 변형로(영문판 대한공론사 창시자) 시인의 피를 이어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 외국어대 영어과를 60년도 졸업 후 서울신문사 외신부기자로 활동했다. 그러다 서울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 연합신문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던 방경자(67)씨와 만나 한국 최초 직업 커플로 결혼했다. 변씨가 미국에 온 것은 서울 신문 LA특파원 발령을 받으면서부터였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도중 5.16 혁명이 나 특파원생활을 못하게 되었다. 그 때부터 LA에서 근 10년 동안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다 겪으며 살았다.처음 도착후 부인, 슬하의 두 자녀와 함께 남의 집에 들어가 기거했다. 부인 방씨는 베이비 시터로, 자신은 공장에 나가 용광로 청소를 하며 성실성을 인정받아 후에 이 회사 수퍼바이저가 되었다. 2년간 수퍼바이저로 일하다 대형 미국교회의 관리장 생활을 2년간 경험했다.
다시 빌딩 청소회사를 차려 뉴욕으로 이주 할 때까지 열심히 운영했다고 한다. 그가 손댄 청소업은 당시 한인으로는 처음이라 ‘한인 청소업계의 대부’인 셈이다. 이후 이 업에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다 성공해 지금 거의 백만장자들이 되어 있다고. 이처럼 변씨는 늘 뭐든지 처음 시작해 길만 닦아 놓았고 돈은 다 남들이 번다고 웃는다.
그 이유는 언어가 가능해 이 것 저 것 할 수 있다보니 일이 쉽게 싫증이 나고 경쟁에 부딪치면 자연히 걷어치웠기 때문이란다. 게다가 뉴욕으로 다시 정착지를 옮기다 보니 이래저래 돈하고는 거리가 멀더라는 것이다. 팔자에 역마살이 있기 때문인지 늘 새로운 걸 향해 떠돌고 개척해왔다. 이러다보니 항상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자신의 모습은 이 모양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처음 뉴욕에서 와서 마땅히 할 게 없어 카펫 판매 외판원을 하다 동서운전학원에 이어 지금 하고 있는 영어교실(성인 대상)의 전신인 영재교육 목표의 동서교육센터(아동 대상)를 운영했다. 아동 대상 교육학원으로 말하자면 그가 한인사회에서는 선두주자였던 셈이다.
그러나 그의 끼는 뉴욕에 와서도 여전히 발동돼 돈 버는 일보다 사회활동에 더 몰두했다. 지금까지 돈보다는 크고 작은 많은 행사와 기록을 남겼다. 대표적인 것으로 플러싱 한인회장, 음력설 창시자로 시의회로부터 특별공로상을 받은 것을 비롯, 공화당 한인후원회 창당, 롱아일랜드 한글학교 설립, 라이온즈 클럽 창설 멤버, 현재의 한미문화협회 회장 등 창설자로부터 회장, 위원장까지 역임한 타이틀만도 36개에 이른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뛴 노력과 공로로 그는 상도 많이 받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한인회 인권위원장으로서 심혈을 기울여 대성공을 가져온 시청 앞 ‘9.18 평화 대 행진’의 결과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브루클린 처치애비뉴 사태가 빚은 한흑 분규의 실마리를 풀기 위해 법 집행을 묵인한 당시 딘킨스 시장의 처사를 규탄하기 위해 모인 1만명 한인업주들이 부르짖던 노도와 같은 함성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인들이 가게문을 닫고서까지 시위에 참여하는 등 그 열기가 뜨겁자 딘킨스 시장이 마침내 분규를 종식시킴으로써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하게 만들었다. 당시 분위기는 시위로 인한 불똥이 한인에게 튈까봐 반대론과 신중론이 팽팽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장서서 무조건 밀고 나가 그같은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그 날 시위는 미국 전 언론의 커버스토리로 장식되면서 미국사회의 관심과 이목을 끌었었다.
그가 꼽는 또 하나의 성공작은 지난번 퀸즈 칼리지 콜든센터 무대에 한국 동화 흥부놀부전을 영어뮤지컬로 올려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뮤지컬은 우리 문화를 미국사회에 알릴 수 있는 가망성과 여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흐뭇해하고 있다. 그는 "이번 공연이 다른 어떤 것 못지않게 마음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영어 뮤지컬이나 영어 연극을 통해 우리문화를 브로드웨이에 올릴 수 있는 가능성을 향해 앞으로도 쉬지 않고 정진할 것이라며 "이번 연극의 불씨를 다시금 뜨겁게 지필 것"이라고 기염을 토한다.
이런 열정으로 변씨가 요즘 또 관심갖고 뛰어든 것이 하나 있다. 40년 전 20대이던 그가 LA에서 단숨에 거둔 5만 달러를 들여 구입, 지금의 LA 한인회 전신으로 건립한 커뮤니티 센터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이 커뮤니티 센터가 "뉴욕에도 반드시 건립돼야 한다"며 필요한 준비에 온갖 열과 성을 다 쏟고 있다. 그의 바램대로 커뮤니티 센터 건립열기는 나날이 불꽃처럼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다시 한번 이 프로젝트가 실현될 수 있도록 다른 준비위원들과 마음과 뜻을 모아 소신을 다해 일할 생각을 갖고 있다. 플러싱이 한인타운의 중심이라고 하면서도 "한인 커뮤니티에 방 한 칸 없다는 것은 창피스런 일"이라며 "무슨 수가 나도 이번 열기로 이 일만은 동포들이 힘을 합쳐 해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요즈음 그는 존 리우 시의원, 베리 그레덴칙 하원의원 등 정치인들을 만나 "같이 힘을 모으자"는 확답을 받아내는 등 사전 작업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자세다.
고 염진호 여사가 운영하던 뉴욕한인여성회 2대 회장으로 열심히 사회활동을 한 바 있는 부인 방경자씨도 항상 뒤에서 그의 활동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슬하에는 미혼인 맏딸 패트리샤(41)씨와 유대계 여성과 결혼한 아들 피터(40)씨를 두고 있다.
추종을 불허하는 플러싱 타운의 마당발, 한인은 물론이려니와 중국인들까지 ‘벤첸수’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활동이 왕성한 그는 오늘도 잰 발걸음을 놀리고 있다. 하루 16시간씩 일과 만남에 미쳐 정신없이 사는 그는 "앞으로도 기운이 있는 한까지 이런 생활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Late Bloomer’ 즉 대기만성(大器晩成), ‘고목에 꽃이 핀다’고 다짐하며 힘차게 뛰고 있다.
<여주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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