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탈북난민보호 뉴욕협의회장으로서 탈북자 돕기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손영구 목사(60)는 요즘 활기에 차 있다. 캔사스 출신 연방상원의원인 공화당의 샘 브라운백 의원이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 미국 망명을 가능케 하는 법안을 지난달 상원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연방하원은 이미 유사한 법안이 지난 1월 공화당의 헨리 하이드 의원의 발의로 계류중에 있다. 이 법안이 상하 양원을 통과할 경우 탈북자들이 미국에 망명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손 목사는 한층 더 바빠지게 될 수 밖에 없다.
손 목사가 탈북자돕기운동에 나선 것은 지난 1999년부터이다. 그 해 3월 워싱턴에서 중보기도모임 국제대회가 열렸는데 한국에서 김상철씨 등 33명의 대표가 참석했고 그 외 지역에서 54명이 참석했는데 손 목사도 이 모임에 참가했었다. 그런데 이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중국내 탈북자들의 비참한 실상을 담은 비디오와 외국 신문기사들을 보고 북한 육군대위 출신인 탈북자 김성민씨의 증언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동이 탈북자를 돕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한국에서는 4월 19일 김상철씨를 중심으로 탈북난민운동 본부가 결성되었고 뉴욕에서는 4월 24일 손 목사가 탈북난민 돕기 뉴욕협의회를 발족했다.
이들은 곧바로 유엔에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100만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서명운동을 시작한지 2달 만에 서울과 뉴욕에서는 100만명을 돌파했다. 그래서 목표인원을 1,000만으로 늘려 서명운동을 계속한 결과 2001년 5월 1,180만495명의 서명을 받아 마감했다. 이중 뉴욕에서는 5만3,200명이 서명운동에 참가했다.
한국에서 전 유엔대사 박근씨를 단장으로 한 유엔청원운동 대표단이 뉴욕에 도착, 손 목사와 함께 일행 7명이 유엔을 방문했다. 서명자의 명단이 든 상자 50개를 관리하는 것은 손 목사의 몫이었다.
50개 상자를 유엔 앞 함마슐드광장에 진열하고 200여명이 탈북자의 난민 인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가운데 대표단은 상징적으로 서명자 명단 1상자를 유엔사무총장실에 전달했다.조직이나 재정상태로 보면 극히 미약했던 탈북자돕기 운동이었지만 손 목사의 열정은 엄청난 성과를 이룩했다.
손 목사는 많은 탈북자들을 미국에 초청하여 한인사회는 물론, 유엔과 워싱턴 정계에 북한의 실상과 탈북자들의 참상을 알렸다. 그가 방미초청한 탈북자 중에는 전 북한군 대위 강성민, 군관 임영선, 농업과학자 이민복, 보위부 중좌 김 용, 그리고 이순옥씨 등이 있다.
손 목사는 워싱턴의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 헨리 하이드 하원의원 등을 만나 탈북난민대책을 호소했다.그리하여 탈북자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증하는 여론을 반영, 미의회는 작년 6월 탈북자 조치 9개항을 결의하는 큰 진전이 이루어졌다.
상하 양원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이 결의안에는 중국정부에 대해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대우할 것을 촉구하고 이들에 대한 강제송환 금지, 피난처 제공, 유엔난민고등판무관과의 접근 허용을 요구했다. 또 미 국무장관은 이를 위해 중국 등 관계국들과 협력할 것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은 중국 내의 탈북자가 다른 나라에 정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미 국무장관은 유엔에서 북한 인권결의안이 채택되도록 노력할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엄청난 성과였다. 손 목사는 이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 큰 힘을 쏟은 샘 브라운백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 헨리 하이드 하원의원과 에드워드 로이스 하원의원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한국의 김대중대통령, 한화갑 민주당 대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에게 이 결의안의 내용을 상세히 알리면서 한국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결의안을 만들어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썼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회창 총재에게서만 편지를 접수했다는 답장이 왔을 뿐, 묵묵부답이었다는 것이다.
이 결의안에서 미 의회가 탈북자들이 다른 나라에 정착할 수 있도록 촉구한데 힘입어 손 목사가 또 추진한 것이 몽골 난민 쉘터이다. 뉴욕의 교계와 독지가들에게 탈북 난민들이 살 수 있는 쉘터를 몽골에 만들자고 꾸준히 설득하여 그간 모금운동을 해 온 손 목사는 작년 11월 몽골을 방문하여 장소를 물색하여 현재 마무리 단계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손 목사가 탈북난민돕기 운동에 골몰하던 중 또 다른 사건이 터졌다. 작년 10월 3일 시카고 교포인 스티브 김씨가 북한의 악정을 고발하고 인권탄압을 규탄하면서 유엔본부를 향해 총기를 난사,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손 목사는 이 사건이 나자 곧 스티브 김 구명운동에 나섰다. 그에게 신문을 넣어주고 위로의 편지를 썼다. 그와 18번이나 오고 간 편지에는 스티브 김의 심정이 너무도 잘 묘사되어 있다. 손 목사는 시카고에 있는 그의 가족들의 생계를 도와주기도 했고 그의 육사 24기 동기생인 한국 장성들을 만나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재판을 담당한 판사에게 탄원서도 썼다.
이 사건은 검사와 협상, 유죄 시인 조건으로 이달중 열리는 공판에서 2년반 정도의 징역이 구형될 전망이라는 것이다.함북 청진이 고향인 손 목사는 6.25 직전 가족들과 함께 월남하여 부산에서 살다가 고려대 재학중이던 1964년 통역장교로 군에 입대했다. 장교생활 10년 중 7년간을 국방부에서 미군과 대북관계 협조업무를 해 온 그는 1973년 대위로 전역한 후 신학교를 졸업, 목사가 되었다. 1980년 미국에 이민 온 그는 트리니티신학교에서 석사학위, 페이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손 목사는 1980년부터 10년간 청소년 선도에 종사했고 1981년에는 나약신학교 한국분교의 교수생활을 했고, 1983년 현재 시무중인 산정현교회를 시작했다. 교회 일만으로도 바쁜 생활인데 탈북자 돕기 등 외도가 심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는 교회가 교회 안에 안주해서는 안되고 사회의 어려움을 도와야 한다는 소신을 역설한다. 지금 국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교회가 이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는 교인들이 이런 사명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런 사업을 위해 외부 손님을 접대하는 등 자신을 열심히 도와주고 있는데 고마움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는 9.11테러 이후 아프간 전쟁이 나자 동역자들과 함께 미국을 위한 기도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이라크전쟁이 났을 때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매일 낮 12시 미국을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 이 사실을 부시대통령에게 알리자 부시대통령은 지난 6월 12일 손 목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손 목사는 이제 탈북자돕기운동을 넘어 친북 좌익 척결운동의 선봉에 나서고 있다. 그는 탈북자와 납북자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일하다 보니 근본 원인이 우상 숭배하는 북한의 악정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해결책은 김정일을 제거하여 공산주의를 없애는 길 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성경에서도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를 말하고 있으며 악과 비진리를 없애기 위해 종이 나팔을 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난 5년간 김대중 정권 아래서 친북좌익 세력이 날뛰게 되어 한국이 월남의 전철을 밟을 우려가 크다고 보는 손 목사는 절대로 그런 사태를 좌시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황장엽씨도 여러 차례 만났고 또 지난달 한국에서 결성된 국민행동 친북좌익척결본부와도 연대하여 친북좌익 세력을 척결하는 일을 새로운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기영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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