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선씨(74·사진)는 난지도가 월드컵 공원으로 바뀐 것을 보면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던 아이들을 위해 난지도에 ‘소년촌(Boys Town)’을 세우고 ‘형’ 노릇을 했던 남편인 고 황광은 목사와 난지도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기 때문이다.
“전에 한국에 갔을때 저기가 난지도라고 가르쳐주면 가슴이 아파서 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쓰레기 매립장으로 변했던 난지도가 월드컵 공원으로 아름답게 변한 것을 보면 땅이 축복받아 부활한 것처럼 느껴져요.”
김씨는 난지도의 변신을 이국땅에서 지켜보면서 어디선가 어두운 생활을 하고 있는 불우한 아이들이 언젠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난지도에서 신혼생활을 시작, 늘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돌보며 살았던 그에게 있어 ‘아이들’이라는 존재는 각별하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기억하는 아픔도 아리기만 하다.
“소년촌 책임자로 있는 남편의 철학이 가슴에 와 닿아 결혼하게 됐어요. 지금와 이야기지만 남편을 형처럼 따르던 아이들이 저를 계모처럼 생각하는 것 같아 가슴이 시린 때도 있었습니다.”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분없이 ‘아이’의 원만한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남편 사별후, 네 자녀를 데리고 이민와 생계를 꾸리느라고 바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큰 애가 15살이었어요. 영어도 잘 못해서 학교 적응도 힘들 때인데 사춘기가 성큼 다가온 거에요. 그 당시에는 자녀 교육에 관해 조언을 구할 기관도 없었고 모두 생존 해결에 급급할 때라 딱히 조언을 요청할 상대가 없었어요.”
그는 홀부모로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이 역부족이라고 생각, 늘 가슴졸이며 아이들을 키웠는데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자녀들을 둔 평범한 한인 부모로 모두 잘 자라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늘 마음으로 같이 살고 있는 이들 자녀, 손주, 이민 오면서 헤어진 이웃들과의 사랑을 나누기위해 최근 손주로부터 배운 인터넷을 활용하느라 바쁘다.
“퇴근하면 인터넷으로 신문 오피니언 페이지를 숙독한 후, 아이, 손주들에게 잘 있나 안부 편지를 써요. 아직 한글 타이핑이 익숙치 않아 편지 한 장을 쓰려면 1시간 걸릴 때도 있어요.”
인터넷 서핑을 하고 TV 연속극을 한 편 보다보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다음날 도시락 거리 챙길 짬도 나지 않는다는 그는 자기 생활을 갖고 있는 당당한 할머니, 어머니가 되기 위해 74세의 고령에도 매일 아침 드롭오프로 향하고 있다.
김유선씨는 황목사가 세상을 떠난 후 미국으로 이민올 때 교인들이 거둬준 성금 2백만원을 고인의 뜻에 따라 불우 청소년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써달라고 영암교회에 기탁,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우신(황광은 목사 아호) 장학회’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정화기자
ch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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