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사극 ‘여인천하’에는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여기 나오는 주요 인물 치고 천수를 누린 사람은 별로 없다. 연산군은 말할 것도 없고 36세 때 대제학이 돼 천하를 호령하던 조광조는 사약을 받고 죽는다. 중종의 비 문정 왕후의 동생(극에서는 오빠)으로 권력의 정상까지 오른 윤원형과 그의 처 난정은 문정 왕후가 물러난 후 음독자살하며 한 때 윤원형을 가혹하게 국문하던 사림파의 거두 안당 또한 역모로 몰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세자의 외숙으로 세도를 떨치던 윤임, 한 때 세자의 자리를 노리던 봉성군, 윤원형의 형 윤원로 등이 모두 사사되며 문정 왕후의 빽을 업고 정사를 농단하던 보우도 왕후가 죽자마자 장살된다. 인종과 명종도 31세와 34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둔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사항이 떠오른다. 이조는 유교를 국교로 떠받들던 나라다. 유교는 공자의 가르침을 숭상하며 공자 가르침의 요체는 ‘인’(仁)이다. 논어 어디에도 정적을 무자비하게 주살하라는 구절은 없다. 그럼에도 이조 500년 사는 부관참시와 능지처참이 판을 치는 피의 역사다. 기나긴 이조실록 어디에도 인간의 어짐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찾아보기 어렵다.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은 것은 유교뿐만이 아니다. 예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인간과 신에 대한 사랑’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는 이조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피에 물들어 있다. AD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자 교회는 즉시 이교도와 이단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이 때 교회 손에 죽은 기독교도가 로마가 300년 동안 죽인 교인 수보다 많다. 유대인 학살과 십자군 전쟁으로 점철된 중세 1,000년은 말할 것도 없고 1517년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 후 계몽시대 이전까지 유럽인들이 흘린 피의 상당 부분은 종교 분쟁이 원인이다.
로크를 위시한 근대 철학자들이 종교적 관용을 강조하고 미 연방 헌법이 수정헌법 1조로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것도 이런 오랜 역사적 체험의 소산이다. 상대방의 종교를 인정하고 어떤 종교도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하지 않고는 평화는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종교 전쟁의 폐해를 일찍이 깨달은 서구와는 달리 아직도 회교권에서는 알라만이 진리이며 이를 신봉하지 않는 자는 모조리 죽여도 좋다는 광신이 남아 있다. 그러나 ‘알라는 정의롭고 자비롭다’는 것이 코란의 첫 가르침이다.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인들의 종교적 관심이 높아지고 기독교와 유대교, 회교 지도자들 간에 서로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을 찾아보려는 노력이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단일 신을 숭배하는 세 종교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종교 치고 ‘이웃을 증오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박해하라’고 가르치는 종교는 없다. ‘진리는 하나다. 현자들은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를 뿐이다’는 힌두교의 금언을 되새기는 세모가 됐으면 한다.
<민경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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