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습관처럼 ‘시작’을 말한다. 하지만 달력이 한 장 넘어갔다고 삶이 저절로 달라지지 않는다.
시작을 현실로 만드는 힘은 의지보다 구조에 가깝다. 함께할 사람을 모으고, 역할을 나누고, 서로의 강점을 연결하는 일. 2026년의 첫 달, 프란츠 리스트의 〈헥사메론〉은 화려한 기교를 넘어 ‘협업과 통합’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1837년 파리, 당대 문화계의 중심인물이던 벨지오조소 부인은 자선 공연을 위해 파격적인 기획을 제안한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여섯 명을 한 무대에 세우는 것. 리스트, 탈베르크, 픽시스, 헤르츠, 체르니, 쇼팽이 빈첸초 벨리니 오페라 〈청교도(I Puritani)〉의 합창 ‘나팔을 울려라(Suoni la tromba)’를 바탕으로 각자의 변주를 작곡했다.
‘6일간의 창조’를 뜻하는 제목처럼, 하나의 선율이 여섯 개의 세계로 펼쳐졌다.
작품은 피아노 테크닉의 총집합처럼 들린다. 도약, 빠른 패시지, 아르페지오, 옥타브, 트레몰로가 쏟아진다. 그러나 핵심은 과시가 아니다.
동일한 주제가 서로 다른 언어로 번역되며 고유한 울림에 이르는 과정이다. 리스트는 여기서 단순한 참여자가 아니라 설계자이자 편집자로 활약했다.
서주와 주제 편곡, 변주 사이의 간주, 피날레를 직접 작곡해 개별 변주를 하나의 서사로 엮어냈다. 덕분에 한 작곡가의 일관된 문법이 아니라, 하나의 ‘액자’ 안에서 여섯 개의 개성이 대비되며 빛났다.
각 변주의 개성은 뚜렷하다. 탈베르크는 ‘세 손 효과’로 우아한 음형을 펼치고, 리스트는 관현악적 울림으로 피아노의 한계를 밀어붙인다.
픽시스는 고전적 균형 속에서 번쩍임을 포착하고, 헤르츠는 살롱의 공기처럼 가볍게 노래한다.
연습곡의 대가인 체르니는 도전적 기교를 뽐내는가 하면, 쇼팽은 서정적 벨칸토로 행진곡을 탈바꿈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렇듯 각자의 강점이 펼쳐질수록 더 강해지고, 각자의 색이 고유할수록 더 환히 빛나는 '협업의 미학'이 생생히 구현되었다.
〈헥사메론〉은 “누가 더 잘 치는가”를 묻지 않는다. 단순한 기교의 전시장이 아니라 협업과 통합의 서사다. 서로 다른 미학이 어떻게 하나의 감동으로 합쳐지는지를 보여준다. 이 곡의 ‘나팔 소리’는 2026년 시작을 알리는 팡파레처럼 들린다.
기술의 발전과 사회적 갈등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간다. 허나 진정한 전진은 나 홀로 독주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재능을 모아 하나의 목표를 향해 뛰게 만드는 ‘연대의 감각’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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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아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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