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노벨상 발표 시즌이 막 지났다. 그 말은 즉, 앞으로 한동안은 트럼프의 징징대는 소리 안 들어도 된다는 뜻이다. 노벨평화상 달라고, 달라고… 사탕가게 앞에 선 아이처럼 어찌나 떼를 쓰는지 창피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1기 때부터 노벨평화상 노래를 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는 아예 대놓고 “나는 7개의 전쟁을 종식시켰다. 모두 내가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라고 주장했다. 노벨평화상이 무슨 전리품인가? 그리고 가자전쟁 휴전 외에 나머지 6개는 무슨 전쟁을 말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노벨평화상의 수상자격에 대해서는 창설자 알프레드 노벨이 유언장에서 명확하게 밝혀두었다. “국가 간의 우애 증진, 상비군의 폐지 또는 감축, 그리고 평화회의 개최를 위해 가장 많은 업적을 이룬 사람”에게 수여하라고 명시한 것이다.
국가 간의 평화와 우애는커녕 터무니없는 관세로 세계 무역질서를 와해시켰고, 국내에서는 인종차별과 정치적 분열을 조장하고, 군대를 동원해 불법이민자들을 인정사정없이 체포, 구금, 추방했다. 또 아무 일도 없는 도시들에 군병력을 보내 위화감을 조성하는 한편, 대학과 언론의 자율성을 위협하고, 법무부를 통해 정적들을 표적 기소하는 권력남용을 매일매일 자행하고 있다. 이런 자에게 평화상이라니, 알프레드 노벨이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일이다.
그런데다 노벨평화상은 후보추천 마감일이 매년 2월1일이다, 올해 이때는 트럼프가 두 번째 임기 시작한지 일주일밖에 안 되었을 때, 이를 뻔히 알면서도 그에게 수상자격이 있다고 아부한 사람들에게 화있을진저.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각계추천을 통해 올해 평화상 후보에 오른 이는 총 338명이었고, 최종 수상은 베네수엘라의 야권지도자 코리나 마차도에게 돌아갔다.
세계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 꼽히는 노벨상은 매년 10월 첫째 주에 6개 분야(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문학, 평화, 경제학)에서 수상자 발표가 이루어지고 상금이 115만 달러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평화상)과 한강(문학상) 외에 과학 분야 수상자를 내지 못해 한이 맺힌 듯 매년 노벨상타령을 하고 있지만, 이 상은 아무리 애를 쓴들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수십년 각고의 노력으로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영향과 업적이 증명된 경우에만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장기적인 연구가 뒷받침돼야하는 상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탄 존 클라크의 경우 40년 전의 ‘거시적 양자 터널링과 에너지 양자화’의 발견으로 수상했으며, 다른 분야의 수상자들도 모두 수십 년 전의 기초연구에 기반한 업적으로 수상의 영광을 누렸다. 이렇듯 수상자 대부분은 실험실에 들어박혀 오랫동안 고독한 싸움을 계속해온 외골수 천재들이어서 노벨상 시즌이 되어도 자신이 후보가 됐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수상했어도 전화를 안 받거나 며칠씩 연락이 안 닿는 경우가 다반사일 정도로 돈이나 명예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그런 업적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한편 노벨상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이에 필적할만한 상들이 적지 않다. 미국에서 ‘천재상’으로 불리는 맥아더 펠로십(MacArthur Fellowship)이 그중 하나로, 미국의 예술, 과학, 인류애 분야에서 ‘탁월한 창의성과 통찰력, 미래를 향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인재 20~30명에게 수여된다.
금융재벌 존 D. 맥아더가 10억 달러를 기부하여 설립된 맥아더재단이 선정하는데, 노벨상처럼 익명으로 추천된 후보들 가운데 선정하기 때문에 수상자들은 자신이 후보에 오른지도 모르고 재단으로부터 축하 전화를 받고서야 깜짝 놀라며 감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문화예술계 수상자가 많고, 상금이 80만 달러나 되지만 사용에 아무런 조건이 없어서 ‘꿈의 그랜트’로 여겨진다.
1981년부터 지금까지 1,175명의 맥아더 펠로우가 나왔는데 한국계로는 2003년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가 최초의 수상자였고, 2021년 최돈미 시인이 두 번째로 수상했으며, 2022년에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 최예진 워싱턴대 교수, 모니카 김 위스콘신대 교수 등이 잇달아 선정됐다. 지난 8일 발표된 2025 수상자 22명 중에도 한국계 2명이 포함됐다. 존스홉킨스 대학의 정치학자 한하리(50)와 콜롬비아 출신 예술가 갈라 포라스 김(40)이 그들이다.
이 외에도 노벨상만큼이나 값지고 영예로운 과학상들이 꽤 많다. 노벨상에서 빠진 수학 분야에서 ‘아벨상’(상금 75만달러)과 40대 이하의 젊은 수학자들에게 수여하는 ‘필즈상’이 있고, 컴퓨터와 인공지능 분야의 ‘튜링상’(상금 100만달러), 천체물리학 나노과학 신경과학 3개 분야의 선구자를 선정하는 ‘카블리상’(상금 각 100만달러), 또 환경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타일러상’(상금 25만달러)은 얼마전 타계한 제인 구달도 수상한 바 있다.
‘밀레니엄 테크놀로지 상’(상금 110만달러)은 태양광 전지나 반도체 등 기술 분야의 혁신가에게 수여되며, 공학 분야에는 드레이퍼상(상금 50만달러), 지구과학 분야에는 베틀레센상(25만달러)이 있고, 이스라엘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울프상’은 수학, 의학, 물리학, 화학, 예술 부문 수상자에게 각 10만달러를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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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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