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노벨은 183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임마누엘과 어머니 안드리에테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들 부부는 8남매를 낳았으나 살아남은 것은 알프레드와 세 형제뿐이었다.
알프레드의 아버지는 이것 저것 사업에 손을 댔으나 모두 실패하고 파산까지 하는 바람에 어린 알프레드 노벨은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 임마누엘은 러시아에서 새 삶을 개척해 보겠다고 산트페테르스부르크로 이주했으며 거기서 폭약 제조업으로 성공을 거둬 경제적 안정을 되찾는다.
그때부터 가정 교사를 둘 수 있게 된 알프레드는 언어와 화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영어, 러시아어를 포함 6개 국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었다 한다. 그럼에도 그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7살에 파리로 건너가 니트로글리세린을 발명한 니콜라이 지닌 밑에서 화학을 공부한다.
노벨 일가는 크리미아 전쟁이 터지면서 군수 물자를 생산해 큰 돈을 벌었으나 전쟁이 끝나면서 군사 수요가 급감, 다시 파산하고 만다. 그러던 와중에 노벨가에 비극이 덮친다. 1864년 막내 에밀이 운영하던 스톡홀름의 니트로글리세린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에밀 포함 5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 물질은 폭발력은 엄청났으나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터지는 바람에 대형 사고가 빈발했다. 이 사고로 안전한 폭발물 개발의 필요성을 절감한 알프레드는 여기에다 안정제를 섞어 불의의 사고 위험을 줄이는데 성공한다. 이것이 그에게 부와 명성 혹은 악명을 가져다 준 다이너마이트다.
어쩌면 그렇게 수많은 부자의 하나로 생을 마감했을 수도 있었던 알프레드에게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진다. 1888년 형 루트비히가 죽었는데 여러 신문들이 알프레드가 죽은 줄 알고 그의 부고 기사를 낸 것이다. 그 중 한 프랑스 신문 제목은 ‘죽음의 상인 죽다’였다. 그리고 첫마디가 ‘가장 빠르게 더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 부자가 된 알프레드 노벨이 어제 죽었다’였다.
이를 보고 충격을 받은 노벨은 1895년 전재산을 기부해 물리, 화학, 의학, 문학, 평화 등 5개 분야에 걸쳐 탁월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매년 상을 주기로 했다. 1968년 스웨덴 왕립은행이 창립 300주년을 기념, 기부금을 내 경제학상이 추가로 마련됐다.
노벨은 기부 다음해인 1896년 6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그에게는 세 사람의 여자가 있었는데 첫번째는 러시아에서 살 때 알렉산드라라는 여성에게 청혼했다 거절당했고 두번째는 베르타 폰 주트너란 비서와 잠깐 동거했으나 헤어졌고 세번째는 43세 때 자기보다 17살 어린 소피아 헤스란 꽃집 점원과 18년간 교제했으나 이 여자가 남의 아이를 가진 것으로 드러나 갈라섰다.
노벨상 중 나머지는 전문가가 아니면 누가 받는지 별 관심이 없지만 문학상과 평화상만은 일반인 사이에도 화제가 된다. 그러나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상이지만 그 선택이 반드시 옳다고만은 볼 수없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준다는 원칙 때문에 일찍 죽은 사람은 그렇다 쳐도 헨리크 입센이나 레브 톨스토이 같은 대문호도 문학상을 받지 못했다.
일부에서는 문학상 수상 조건에 ‘이상적인 방향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문구가 있어 현실주의적 작품은 불리하다는 분석을 하기도 한다. 그 때문인지 밥 딜런 같은 문인도 아닌 가수에게 문학상을 주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치색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평화상은 더 하다. 인류 평화를 위해 누구보다 힘쓴 마하트마 간디는 몇번이나 후보에 올랐는데 받지 못했고 사기 평화협정으로 월남을 패망으로 이끈 키신저나 테러 단체 총책 야세르 아라파트는 받았다. 나중에 인종 탄압에 앞장선 아웅산 수키나 대통령이 된 거 말고는 한 일이 없는 오바마도 잘못된 수상의 표본이라 할만 하다.
올해 평화상은 수십년간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워온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58)에게 돌아갔다. 마두로 정권의 탄압을 피해 숨어 지내면서도 국외로 탈출하지 않고 반독재 투쟁에 나서고 있는 그녀는 작년 에드문드 곤잘레스라는 반독재 연합 후보에게 표를 몰아줘 압도적인 승리를 이끌어냈음에도 마두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 정권은 물론 전임자인 우고 차베스 때부터 독재와 부패와 싸워온 그녀의 용기와 공을 생각하면 이번 수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이것만으로 그녀의 투쟁이 승리로 끝난다는 보장은 없다. 2021년 평화상은 러시아의 독립 신문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인 드미트리 무라토프에게 돌아갔지만 푸틴 독재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 2023년에는 이란의 인권 운동가 나르제스 모함마디가 평화상을 받았지만 아직도 물라들은 건재하다.
노벨은 ‘죽음의 상인’에서 ‘평화의 후원자’로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지만 세계가 평화를 향해 가야할 길은 아직 멀고도 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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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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