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세종시 파견기자로 기획재정부를 출입할 때 당시 모든 언론과 경제 전문가들이 핵심 키워드로 삼았던 단어는 바로 ‘골든타임’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양적완화(QE) 등 무제한 돈풀기에 나섰던 미국이 금리를 올릴 타이밍이 다가왔고, 결국 한국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으니 그 전에 4대 구조개혁(노동·공공·금융·교육)을 완수해야 한국 경제가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키워드다. 하지만 국정농단이라는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면서 구조개혁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8년이란 세월이 또 흘러갔다.
약 2주 뒤인 6월3일 한국은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지난해 12월3일 계엄 사태가 벌어지고 3년 만에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후 진행되는 조기 대선이다.
하지만 단지 정권이 바뀐다고 모든 게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정권교체가 한국 사회에 누적돼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요술 방망이가 아니라는 얘기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와 경제는 복합 중증질환 환자와 비견할 정도로 망가져 있는 상태다. 지난 1분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0.2%로 추락했고, 경기부진으로 매년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펑크가 발생하는 실정이다. 극심한 내수침체로 매년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예산으로 성장률을 떠받치지 않으면 안 되는 기이한 경제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또 정치권이 돈풀기에 올인한 탓에 국가채무는 해마다 수십조원씩 늘어 1,100조원을 돌파한 상태다.
주택 가격은 폭등하고 청년 취업률은 바닥을 기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세계 최저수준으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저출산 관련 최악의 사례로 한국을 여러 차례 거론할 정도로 악화됐다. 20~30대 청년층 사이에서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는 비혼과 딩크(Double Income No Kid)는 유행처럼 급속도로 번져 나가며 대세가 된 상태다. 미국 역시 저출산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지만 한국과 비교해서는 여전히 상황이 나은 편이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수십년 내 소멸하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역대 정부가 구조개혁을 등한시하고 자기 지지층의 구미에 맞는 정책에 올인한 탓이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은 항상 취임사 선서를 통해 ‘나를 지지하는 사람뿐 아니라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포용하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지만, 정작 권좌에 오르고 나면 누구보다 지지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정책에 골몰한다.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의 지지가 공고해야 정권 후반기에도 힘이 빠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정책의 주파수와 알고리즘이 지지자에게만 맞춰져 있는 것이다.
나라 면적이 캘리포니아 면적의 4분의 1에 불과한 한국은 세대, 지역, 연령, 성별, 정치성향을 두고 민심이 잘게 잘게 쪼개져 있다. 사회적 신뢰자본이 마이너스인 탓에 어떤 정책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기 어려운 상태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분열과 갈등을 감내할 시간이 없다. 차기 대통령은 이념보다는 경제를, 분열보다는 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야 한다. 특히 주력 산업부재로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에 인공지능(AI)을 포함해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단기 지지율에 집착해 돈 뿌리기와 포퓰리즘에 열중하기 보다는 국민에게 욕을 먹더라도 국가의 장기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대통령이 나와야 한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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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용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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