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먹어야지!”, “싫어!" 무더운 날씨에 입맛이 없어서 일까. 최근 우리 집 밥상은 한 입이라도 더 먹이려는 나와 그만 먹으려는 아들 간의 전쟁터가 되었다. 무엇을 먹여야 아들의 입맛을 되돌릴 수 있을까. 고심 끝에 물김치가 생각났다.
물김치는 나를 키워 주신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다. 물김치는 할머니의 ‘비장의 무기’ 였다. 나는 어릴 때 입이 짧기로 유명해서, 할머니가 쫓아다니며 밥을 먹였다. 할머니가 물김치에 밥을 말아 한입, 두 입 떠먹여 주면 나는 그제야 못 이기는 척 밥을 삼켰다.
할머니는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대신해서 나를 키워 주셨다. 50대 초반에 평생 살아오던 전라도 땅끝마을 해남을 등지고, 손녀딸이 사는 부산에서 새로 인생을 시작한 할머니의 기분은 어떠셨을까? 할머니는 어린 나에게 부산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다. 손녀딸 덕분에 좋은 곳 산다고 나에게 “우리 딸, 우리 딸” 하셨다. 당시에는 할머니가 재밌게 지내시는구나 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서 내가 두 아이를 키우며 보니, 그건 즐거움을 찾으려는 할머니의 노력이었다.
아파트 노인정에 가서 전라도 사투리 쓴다고 할 까봐 말 한마디 안 하고 앉아 있다가, 구성진 노래를 불렀더니 동네 할머니들이 나를 다시 보더라 하시던 할머니의 모습. 비슷한 처지의 남동생 친구 할머니와 친해져서 자주 약수터에서 만나시던 모습. 아파트 뒤편 노는 땅에 고향에서 처럼 작은 밭을 일구어 호박, 상추, 고추 등을 키우시던 모습 등. 지금 생각하면 하나같이 할머니가 새로운 터전에 뿌리를 내려 적응하려던 모습들이다. 나는 시간이 흘러, 미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중년의 나이가 다 되어서야 할머니의 수고로움을 되짚어 본다.
나는 낯선 미국에서 할머니표 물김치의 맛을 재현하고자 했다. 처음 만든 물김치는 짜고, 텁텁했다. 할머니 물김치처럼 톡 쏘는 청량감이 없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일주일을 그대로 방치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김치가 익자 마법처럼 맛이 훨씬 좋아졌다. 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은 것처럼, 김치는 시간이 만드는 음식이었다.
맛이 제대로 들었다 싶었을 때 물김치를 아들에게 선보였다. 아들은 맛있다며 밥을 한 그릇 뚝딱 해치웠다. 나는 아들이 어른이 되어 이 물김치를 ‘엄마표 물김치’로 기억하게 될 날을 상상했다. 살면서 아무리 막막하고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그래서 입맛을 잃어버리는 때가 오더라도, 이 물김치의 새콤한 맛이 입맛을 되살릴 음식으로 기억되길 바랐다. 할머니가 내게 해 주신 것 처럼 말이다. 그날을 위해 나는 올여름 매 끼니마다 할머니에게서 배운 사랑과 시간의 선물, 물김치를 식탁에 올려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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