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은 묘약과 같다. 나는 종종 쇼핑을 통해 활력을 받는다. 한동안 집안에 죽은 듯이 조용히 잘 갇혀 지내다가도 갑자기 후다닥 하던 일을 다 멈추고, 몰(Mall)로 달려나갈 때가 있다. 꼭 필요한 무엇이 있어서도 아닌데 마켓이 주는 자석같은 마력에 끌리는 것 같다. 나는 몰 쇼핑뿐만 아니라 목요일마다 열리는 파머스 마켓, 도서관 뒷마당의 헌 책 쇼핑, 화원의 꽃 쇼핑 등 다 좋아한다.
쇼핑 얘기가 나왔으니 빼놓을 수 없는 데가 또 한 곳 있다. 한국을 방문하면 ‘교보문고’ 등 책방도 돌아보지만, 반드시 꼭 몇 번 다녀와야 직성이 풀리는 남대문 시장이다. 신세계백화점 뒷문으로 나가면 곧바로 몇 발자국 걷지 않아도 여행가방으로부터 시작해 셔츠나 막 입는 바지 등을 카트에 늘어놓고 아줌마 아저씨들이 왁자지껄 호객을 하고 있다. 필요한 품목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곧장 열기에 끌려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며 셔츠와 바지들을 뒤적거리며 함께 어울린다. 그렇게 사람들과 서로 큰 목소리로 웃고 대화하며 밀고 밀리다 보면, 며칠 전 태평양 건너에서 끈끈하게 묻어온 잡다한 것들이 내 몸속에서 말끔하게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팬데믹 이전 한국 방문 시 빠뜨릴 수 없었던 남대문 시장의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다. 살아 있다는 생명의 꿈틀거림이 온 몸 구석구석에서 펄떡이는 맥박으로 되살아나던 고국의 진한 냄새. 마주 스쳐 지나는 사람들의 높은 대화소리와 웃는 얼굴이 나와 무관치 않게 느껴져 덩달아 헤실헤실 웃음을 걷잡지 못했던 정겨운 남대문 시장의 매력이다.
발끝만 살짝 가리는 살색 나일론 양말 “12켤레가 만원이요!” 남자 면양말 몇 켤레 속옷 몇 개와 백양 런닝셔츠 몇 장, 게다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색다른 것들을 무슨 보물이나 되듯, 검은 비닐봉지로 돌돌 말아 덥석 정겹게 건네주는 아줌마. 나도 고마워서 그분의 손을 꼭 마주잡고 얌전하게 접은 돈을 건넨다.
팬데믹으로 계획했던 2020년 10월의 한국 여행이 무산되고 2021년 5월로, 그 역시 가능하지 않아 또 한해 뒤 2022년 5월로 미뤄지던 중에 이번엔 우리에게 일이 생겨, 또다시 2022년 가을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고국 방문이다.
걸핏하면 마켓으로 달려 나가곤 했다는 소크라테스, 그도 마켓에 꿈틀거리는 삶의 생동감을 때때로 느끼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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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옥 / 샌프란시스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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