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 태어나 피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언젠가 닥칠지 모르는 이 생과의 별리 즉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으로서 납부해야 하는 세금이다.
그런데 미합중국에 살고 있다면 피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배심원이다. 나 역시 지난해 배심원 소환장을 받았다. 소환이라는 말의 뜻이 그러하듯 배심원 소환장을 받아들고 기뻐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소환이란 법원이 피고인, 증인, 변호인, 대리인 따위의 소송 관계인에게 소환장을 발부하여, 공판 기일이나 그 밖의 일정한 일시에 법원 또는 법원이 지정한 장소에 나올 것을 명령하는 일이다.
따라서 소환장을 받는 사람은 법원으로부터 “~~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민사재판의 원고인 채권자를 제외하고 법원 소환장을 받고 좋아할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명령이란 본인의사가 무시되는 상황 즉 ‘구속’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업인 판촉물 비즈니스가 성수기를 맞고 있던 지난해 가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배심원 소환장이 날아와 전화로 6개월 연장시켰다. 이어 두 번째 소환장을 받곤 법원까지 달려가 해외여행을 핑계로 다시 6개월을 연장을 시켰다.
드디어 9월 중순 소환장이 ‘면도칼’처럼 날아들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가 되고만 것이다. 이 의무를 굳이 연장 또는 기피하려고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학창시절 서울서 관람하였던 할리웃 고전영화 ‘12인의 배심원(12 Angry Men)’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외부와 차단된 공간에서 서로 이름도 모르는 12명의 배심원들이 피고의 유무죄 합의도출 과정을 그린 영화였다.
배심원 의무를 수행하려니 폐쇄공포증이 있는 필자로서는 그 공포에 대처하여야 했다.
법원으로 출두하기 전, 강심제 몇 정을 복용하고 집을 나섰다. 배심원 대기실에 집결한 사람들은 무려 200여 명이 넘었다. 그 순간부터 자유는 구속되었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이름이 호출될 때까지 무작정 대기하는 것뿐이었다.
내 이름은 오후 3시 반이 되어서야 호출되었다. 법원출두 후 6시간 반만이었다. 3층 몇 호실인가로 인도된 배심원 후보들은 7~8명의 변호사들과 마주하였다.
법원서기가 소송개요를 설명했다. 민사소송으로 뉴욕경찰(NYPD)이 공무수행 중 일으킨 자동차추돌 사고 배상소송이었다. 상해를 입은 민간인이 NYPD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이다.
편견과 이해충돌을 막기 위해 원고 측이나 피고 측인 뉴욕시 변호사들과 개인적 친분이 있는 사람, 뉴욕시 직원이거나 뉴욕시로부터 고정적으로 소득이 있는 사람, 배심원의무를 수행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은 말하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말들을 했다. “야간에 택시 운전을 하기 때문에 주간에 법원에 나오면 잠을 잘 시간이 없다” ”영어가 불편하다.” “고용주가 무노동에 대하여 임금을 줄 입장이 아니다” 등.
좌우 눈치를 보다가 조용히 손을 들었다.
“저는 판촉물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데, 시월이 달력과 크리스마스 선물용 수요가 가장 많은 달입니다. 10~11월에 주문을 받지 못하면 비즈니스에 큰 차질을 빗게 됩니다.” “직원이 하면 되지 않나요?” “혼자 뛰는 1인 사업체입니다.” 차마 폐쇄공포증을 거론할 순 없었다.
그들이 숙의를 거친 후 몇 몇 사람의 사유가 받아들여졌다. 필자를 포함하여.
곧이어 1층에서 배심원임무 완수 수료식이 ‘거창하게 거행’되었다. 법원서기가 한 손으로 주는 수료증을 ‘양손’으로 공손하게 받았다. 4년제 대학졸업장보다 더 값져보였다!
이로써 지난 일 년 내내 뒷머리를 누르던 무거운 짐으로부터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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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태격 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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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시켜야할 제도 중의 하나가 배심원제도이다. 타당성도 없을 뿐더러 이 제도를 없애면 법원 직원 1/3은 줄여도 되겠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