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사는 이야기/제22대 뉴욕한인의류산업협회 김영호 신임회장
안동 포목점집 아들로 태어나 양복점 잔심부름 하며 성장
실패해도 주저앉지 알고 우뚝 일어서 별명도 ‘오뚝이’
후세들이 더 큰 시장서 활약할 수 있도록 발판 마련해 주고파
뉴욕한인의류산업협회 수장이 새롭게 바뀌었다. 제21대 김영호 수석부회장이 제22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임기는 지난 1일부터 앞으로 2년. “한인의류산업협회의 현안을 회원들의 지혜를 모아 풀어나가겠다“는 김영호(58) 신임회장의 포부를 들어본다.
■의류산업단지 이전 & 세대교체 가교역할
그는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선진화된 한인 의류산업계로 도약하겠다’고 다짐한다. 신임회장 포부를 회원사의 현안해결과 협회 내 세대교체를 위한 인재영입에 우선적으로 두고 있는 이유다.
회원사를 위한 선결과제로는 날로 치솟고 있는 임대료 인상으로 인한 공간부족 현상 해결을 꼽는다. 그래서 브루클린 의류산업단지 조성추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미 맨하탄에서 브루클린으로 의류산업단지 이전이 불가피한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브루클린 보로가 세금감면, 직원들의 임금 일부 지원, 셔틀버스 제공, 기술적 프로그램 지원 등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회원사들이 더 많은 지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협회 내 세대교체를 위한 인재영입도 꾀하고 있다. 우선대상은 협회가 7회에 걸쳐 ‘뉴욕 코리안 패션페스티발’에서 선정한 패션 전공 장학생들이다. 뉴욕의 패션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젊은 세대들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한국의류산업계와 협업으로 ‘패션페스티발과 장학생 선발’을 지속적으로 개최하기 위해 이미 준비 작업에 착수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후세대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신임집행부에 40대 전후 연령대의 젊은 세대들을 차세대팀장, 대외협력팀장과 대내행상팀장 등 ‘행동대장(?)’에 포진 시키는 이유다. 결국 그들로 인해 1세들의 풍부한 경험과 젊은 세대들의 능력과 아이디어를 통해 폭넓은 혜택을 회원사에게 제공하는 협회가 되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후세들이 성장해서 더 큰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도 그의 목표인 것이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의 ‘Made in USA' 정책을 잘 활용하여 현재의 위기를 기회의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 해외진출 미국 패션기업들이 다시 돌아왔을 때 회원사들과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Made in USA' 캠페인에 적극 동참하는 이유다. 그에겐 희망을 갖고 준비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서다.
그는 “협회의 도약과 세대교체에 가교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회원들도 그동안 한인사회의 젖줄이자 이민사회 성공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후세들이 자긍심 속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다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내일을 향한 회원들의 협력과 단합된 모습을 당부했다.
■얽매이지 않는 삶
그가 협회에 참여한 것은 ‘올해의 최우수봉제업체’로 선정된 것이 계기다. 그 후 26년 동안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사로 시작 부회장을 8년간 역임하고 수석부회장도 맡았다. 2011년 협회이름을 의류산업협회로 변경하는 데도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부회장으로서 급변하는 비즈니스 환경 속에서 봉제라는 국한된 명칭이 협회 발전과 활동에 제약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고참(?)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다양한 패션 관련 업종의 회원사를 확보하고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한 미래지향적인 협회발전을 도모하고자 이름을 개칭하는데 앞장섰던 것이다. 협회는 회원사의 화합도모는 기본, 미래에 대한 안목과 비즈니스에 대한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을 갖출 때 회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는 비즈니스를 운영할 때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다. 위험을 감수하고 정면승부 한다. 머물러 있기보다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변화를 따라가기 보다는 이끌어 가려고 한다. 그로인해 실패도 경험했다. 하지만 그가 끊임없는 자기 개발을 통해 한인최초로 대형의류업체들의 샘플 상품 개발 대행사를 자처하고 나설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1990년 초 봉제공장을 운영했다. 90년대 후반에는 업소를 접고 미국 의류회사에서 근무하며 선진화된 새로운 경험을 쌓고, 유통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2003년 자니패션스튜디오를 창업했다. 바이어와 봉제업체를 연결해주는 전문 샘플링 회사를 차린 것이다. 바이어의 오더를 봉제업체에 전달하고, 봉제업체에서 생산한 제품의 품질관리까지 담당하는 위탁 판매업체의 개념을 한인 최초도 도입한 것이다.
현재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버전으로 일한다. 의류회사의 주문을 받으면 패턴을 짜고 가봉을 해 샘플을 만든다. 그 후 그 회사의 디자이너 등 관계자와 품평회를 갖는다. 완성된 디자인을 봉제업체에 보내 생산과정에서 꼼꼼하게 품질관리를 한다. 이런 과정은 패션 감각과 능력이 없으면 감당할 수 없다. 전문적이며 신속한 기동력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가 패션 감각이 살아있다는 평을 받는 이유다.
그의 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2015년에는 자체브랜드도 런칭했다. 브랜드 이름은 ‘UP-DOWN ACRO-SS'. 위탁판매와 웹사이트 판매를 통해 이름은 널리 알려가는 중이다.
그의 사업철학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을 위해 창작활동을 스스로 할 수 있는 ‘얽매이지 않는 환경 조성’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 개성과 창의력을 갖춘 자기색깔이 확실한 직원을 양성하기 위함이다.
■포목점집 막내아들.
그는 1958년 경북 안동에서 포목점집 아들로 태어났다. 2남1녀 중 막내. 아버지는 양복 테일러. 어려서부터 소몰이 꼴 베기 등을 하며 자랐다. 민물고기를 잡고 놀던 낙동강은 놀이터였다. 국어과목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겼다. 장래희망은 교사. 서당훈장인 할아버지를 보며 꾸던 꿈이다. 그는 집안일을 잘 돕는 착한 막내로 자랐다. 중학교 때는 양복점에서 잔심부름을 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때 돌아가셔 작은아버지가 물려받은 곳이다. 다리미 숯불을 준비하고 양복배달 등이 그가 하던 일이다.
고향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서울로 올라왔다. 형님이 명동에서 운영하던 양장점에서 재단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그곳에서 양장재단 기술을 배웠다. 그 후 백화점에 여성의류를 납품하는 회사에 재단사로 취직했다. 3년 정도 경험을 쌓고 독립해 여성의류 납품 점을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을 따서 ‘영 프로덕션’을 차린 것이다. 그렇게 5년 정도 운영하다 1988년 미국으로 왔다. 새로운 도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뉴욕에 처음 와서는 형님이 운영하던 맨하탄 봉제공장에서 여성정장 재단사로 일했다. 1년 후에는 자신의 봉제공장을 차렸다. 처음엔 50여명의 종업원과 함께 일했다. 호황기였던 2000년대 초에는 종업원이 300명까지 일을 한 적도 있다.
노조문제로 쫄딱 망한 적도 있다. 그래서 미국 회사에 취직 선진 기술을 배우고 유통구조를 파악하며 재기를 노렸다. 그 후 한인 최초로 여성의류 전문 유명브랜드업체를 대상으로 샘플 상품 개발 대행사를 차렸다. 마켓 트렌드를 제대로 읽고 틈새시장을 정확히 공략해 불황에도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노조문제와 불황으로 몇 번의 실패를 경험했던 그는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다시 우뚝 일어섰다. 지금 실력 있는 50명의 직원들과 함께 시장에서 지명도가 높은 업체를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다. 실패해도 주저앉지 않는 근성 때문에 별명도 오뚝이다. 앉아서 주문만 받던 비즈니스 방식을 종식시킨 그는 시장의 흐름에 앞서 능동적인 비즈니스를 하며 이제는 자체 브랜드도 개발하여 업계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교사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1년에 한 번씩 목포국립대학 의상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특강을 하는 것으로 그 꿈을 대신하고 있다.의류협회회장은 한마디로 ‘다리’라는 그는 회장으로서 한인 1세대와 2세대, 한인사회와 미 주류사회의 가교역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언제나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그가 이제 의류산업협회 수장을 맡아 어떤 활동을 펼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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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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