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사는 이야기/김수현 퀸즈한인회 제26대 신임회장
81년 이민와 플러싱서 학창시절
22년간 실력있는 변호사로 명성
재임기간 세대간 화합 이루고파
설 퍼레이드에 2세참여 많았으면
그는 사춘기 때 이민 온 한인 1.5세다. 한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한다. 영어 소통도 능통하다. 1세보다 훨씬 자유롭고 합리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다. 한인사회 봉사경험도 풍부하다. 22년차 변호사로 경력도 화려하다. 지도자의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첫 1.5세 한인회장으로 세대 간, 단체 간 화합과 단합을 이끌어 내는 교두보 역할에 최선을 다 하겠다는 소신도 확고하다. 그는 40년 가까운 역사의 퀸즈한인회 첫 1.5세 한인회장인 김수현(49) 변호사다.
■타고난 리더십
그는 1967년 서울서 태어났다. 2남1녀의 막내. 아버지는 대기업 중견간부. 초등학교는 사립인 영훈을 다녔다. 성격은 활달했고 사교성이 좋았다. 학교와 동네 친구들이 많았던 이유다. 모범생에 통솔력이 있어 매 학년 반장이었다. 전교회장도 그의 몫이었다. 선거 때마다 리더십을 인정받은 셈이다. 과목은 국어와 사회를 좋아했다. 운동은 축구를 즐겼다. 신일중학교 2학년을 다니다 미국에 왔다. 아버지가 뉴욕지사장 발령을 받았기 때문.
1981년 가족과 이민 온 그는 뉴욕서 중학교를 다녔다. 처음에는 언어문제와 친구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적응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했고, 한 반에 50% 정도였던 한인학생들이 도움이 됐다. 지금도 그들하고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을 정도다.
그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사춘기를 보냈다. 베이사이드 고등학교를 다닐 땐 갱단 등 청소년비행 문제가 심각했다. 인종문제도 겪어야 했다. 축구선수를 하며 학교생활에 적응하도록 노력을 기울였다. 한인학생 회장을 맡아 문제해결에 적극 나서기도 했다. 뉴욕 각 고교 한인학생회와 힘을 모아 ‘아름다운 축제’를 열었던 것이다.
1.5세 이민자로 고등학교를 다닐 때가 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적응하려는 노력과 타고난 통솔력으로 사춘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객에 귀 기울이는 변호사
그는 정치와 역사에 관심이 많았다. 세인트존스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NYU에서 정치학 석사과정도 마쳤다. 법대진학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변호사가 되고 싶었다. 직업으로는 전문직이라 좋았고 미래에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겠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시라큐스대 법대에서 법 공부를 한 이유다.
졸업 후에는 1995년부터 4년여 동안 미국의 유명 대형로펌에서 경험을 쌓았다. 1998년 시라큐스대 법대를 졸업한 친구이자 파트너인 차현구 변호사와 자신의 이름을 내건 ‘김 & 차 합동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현재 총 8명의 변호사가 함께 일하고 있다. 20년 동안 퀸즈 베이사이드, 맨하탄, 뉴저지 등 3개의 사무실을 운영하며 각 분야에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들이 고객을 맞고 있다.
그는 한인 1.5세로서 22년간 다져진 소송 재판 경험으로 사고 상해 전문변호사로서의 명성을 쌓아오고 있다. 실력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을 맡으면서 오랜 시간 쌓인 노하우와 풍부한 경험이 그의 강점인 이유다. 수임료보다는 억울함을 해결해주는 사명감을 갖고 의뢰부터 재판까지 직접 책임지고 일을 할 때 보람을 느낀다는 그는 의뢰인들의 법률적 고충을 같이 고민하고 호흡하며 진심어린 신뢰를 쌓는 것을 중요시 여긴다. 크고 작은 사건에 개의치 않고 모든 고객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은 기본이다. 22년의 경험이 하루아침에 쌓인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큰 사건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면 절대로 맡지 않는 신의도 지키고 있다.
변호사의 직업적 장점은 도전의식이 강하고 개인 성취감이 높으며 평생 직업이란 점이지만 개인시간이 많지 않은 것은 단점이라 귀띔한다. 그의 철학은 고객에 귀 기울이는 진정성을 가진 변호사로 일하는 것이다. 고객의 고민을 잘 듣는 것은 상황을 잘 파악하여 해결방법을 찾는 것은 물론 섣불리 판단하는 과오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풍부한 경험으로 최상의 법률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면서 고객의 신뢰를 구축하는 초심을 잃지 않고 실력을 갖춘 성실한 변호사로서 고객의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친절하고 감동적인 서비스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셈이다.
■첫 1.5세 한인회장
그는 한인 1.5세 출신으로 한인사회에서 왕성한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변호사가 되면서 뉴욕한인변호사협회에 적극 참여했다. 2년 동안 상임이사도 지냈다. 롱아일랜드 한국학교 이사장도 역임했다. 미주한인청소년재단의 제6대 회장도 맡았다. 이사, 인턴십 코디네이터, 부회장 등의 경험을 토대로 2년 임기에 1년을 더해 3년 동안 회장을 지냈다. 이사진 참여 확대, 재정확보 마련, 프로그램 질적 향상 등이 그의 업적이다.
제33대 뉴욕한인회에선 법률분과위원부회장과 뉴욕한인의 밤 공동준비위원으로도 활약했다. 현재 뉴욕한인회에서는 공동수석부회장이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뉴욕협의회에 3대에 걸쳐 자문위원이다. 현재는 차세대분과부회장이다.
한인사회의 활발한 봉사경험으로 올해부터는 퀸즈한인회 제26대 신임회장을 맡았다. 뉴욕일원 한인회에서는 첫 1.5세 한인회장이 된 셈이다. 그래서 포부도 남다르다.
플러싱 출신 이민자인 그는 1.5세와 2세 중심의 집행부와 1세들 위주 이사회의 화합을 통한 세대 간의 화합을 이끌어 내겠다는 계획이다. 한인회가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민원봉사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전문직으로 구성된 집행부를 잘 활용해 매달 정기적으로 무료 상담이벤트를 개최하는 방식이다. 뉴욕총영사관의 순회영사 때는 무료이민법률 상담과 노동법 세미나 등도 마련한다.
시, 정부의 각종 부처와도 연계해 세미나와 웍샵을 통해 유용한 정보도 받을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한인회의 위상 정립도 목표다. 1세들만의 리그로는 미래가 없는 만큼 1.5세와 2세까지 화합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에 박차를 가하는 것이다. 가교역할은 신뢰성, 재정적 투명성과 자립기반 구축, 위상정립 등을 보여 주는 것이라 여긴다.
1.5세와 2세들에게는 한인회의 확실한 신념을 보여줌으로써 자발적인 참여와 적극적인 활동을 하도록 할 방침이다. 오는 2월4일 펼쳐지는 ‘2017 설날 퍼레이드 & 우리서 대잔치’도 역대 최대 규모로 성대하게 치루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한인 2세들의 참여도 이끌어 낼 계획이다. 이를 위해 한인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와 후원이 필요함도 강조한다.
퀸즈한인회가 대표성을 갖고 로컬정치인과의 교류를 통해 정치, 사회, 문화, 이민 등 모든 분야에서 한인사회의 대변자 역할에도 앞장설 계획이다. 한인회에 전문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한인 권익보호와 실질적인 이익추구를 위한 대변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뉴욕일원 첫 1.5세 한인회장으로서 성공적인 모범 사례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는 의지와 다짐인 셈이다.
■남에게 덕이 되는 삶
그는 만족하는 삶이 행복이라 생각한다. 인생은 다양한 만남을 통해 경험을 쌓는 것이라 여긴다. 규칙적인 생활과 스트레스 없이 살려고 하는 긍정적 사고를 건강비결로 꼽고 있는 그는 운동으로는 골프를 즐긴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여 대인관계가 폭넓고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평가 받고 있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단체를 맡아달라는 러브콜도 잦은 편이다.
한인들의 봉사자이자 대변인이 한인회장이라 여기는 그는 세대교체를 위한 가교역할과 봉사단체로서의 위상정립을 최우선 과제로 꼽는다. 첫 1.5세 회장으로서 나름대로 자긍심과 책임감을 느낀다는 그는 한인 모두가 성공하여 뿌리내리고 살 수 있도록 총력을 기울이려고 하는 만큼 많은 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을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그는 1996년 2년의 연애 끝에 소아과 의사인 현재의 아내와 결혼했다. 외모는 물론 차분한 성격에 이해심이 높고, 서로 잘 맞는 좋은 ‘반짝’이란 매력에 빠진 것. 아내와 사이와 2녀 1남을 두고 있다. 25년 동안 프라미스 교회를 다니는 그는 매년 2차례에 걸쳐 각각 7일 정도 전 가족과 성극 해외 선교에 나선다. 지난 2012년부터 교회봉사와 선교차원에서 5년째다. 다녀온 나라도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콜롬비아,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말레이시아 등 10개국이다. 그는 결혼을 안정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 하는 날들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편안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적 ‘거짓되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가훈 속에서 자랐다. 자녀들에게도 어떤 일을 하던 ‘최선을 다하라!’고 가르친다. 그가 자녀들에게 ‘남에게 덕이 되는 삶’을 살며 솔선수범하는 이유다.
<
연창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