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76세 심장질환으로…재직 당시 업적 논란
폴 셸 전 시애틀시장이 향년 76세로 별세했다. 셸 전 시장은 지난 주 심장질환 수술을 받았던 스웨디시 병원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27일 아침 숨을 거뒀다.
에드 머리 시장은 “셸 전 시장은 시민 운동가, 변호사, 항만청 커미셔너, 시장으로서 40년간 시애틀의 사회기반 시설 구축에 큰 영향을 미친 훌륭한 인물”이라며 그의 별세에 애도를 표했다.
아이오와 태생(1937년)인 그는 아이오와의 와트버그 칼리지에 입학한 뒤 아이오와 대학으로 전학해 졸업하고 뉴욕의 컬럼비아 로스쿨로 진학했다.
이후 시애틀로 옮겨와 변호사로 활동하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시애틀 시장직에 도전한 그는 1997년 항만청 커미셔너로 재직 중 제 50대 시애틀 시장에 당선됐다.
시장 재임 4년(1998~2002년) 동안 파란만장한 시련을 겪은 끝에 2001년 재선에 도전했다가 예선에서 3등으로 낙선했다. 시장 선거 65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셸 전 시장은 지난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총회 당시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시위대를 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강경 진압하는 등 시민과 사회운동가들로부터 맹비난을 샀다. 또 워싱턴주 경제의 대들보인 보잉 사가 당시 셸 시장과 벌였던 여러 가지 협상이 불발돼 보이이 본사를 시카고로 옮기는 단초의 일부가 됐다. 2001년 여름에는 한 시민 운동가에게 폭행당해 눈 주변이 크게 멍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시장 재직 당시 도서관 건축에 큰 업적을 남겼다. 명물이 된 시애틀 중앙도서관 건립을 위해 1억9,600만 달러의 채권을 성공적으로 발행했고, 시애틀 각 지역에 도서관을 건립했다. 이 때문에 그는 시장재직 당시 행정보다 도시 디자인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유가족으로는 컬럼비아대 로스쿨 당시 만나 51년을 함께 했던 부인 팸 셸과 딸 제이미가 있다. 장례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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