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하나만 바뀐 것뿐인데 신경이 쓰였다. 내 나이 오십 되었을 때 그랬다. 직업이 목사인지라, 너무 젊은 건 오히려 부담이었던 삼십 대에서 사십으로 넘어갈 때는 안 그랬다. 삼십 후반에 담임목사가 되었기에, 아버지뻘, 심지어 할아버지 할머니뻘 되는 분들 앞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했다. 가끔 실수라도 하게 되면, “우리 목사 나이 어리니까” 식의 소위 ‘어린 종 증후군’에 쉽게 포장되어버렸다. 그래서 그땐 사십 넘어선 게 은근한 자랑이었다. 이젠 나한테 뭐라 않겠지?
그러기를 십년이 지났다. 그 후 오십으로 꺾어지면서는 완연히 다른 기분이었다. 흔히 ‘다운 더 힐(down the hill)’이라고 그러지 않는가. 사십까지는 모든 게 다 ‘상승’이었는데, 오십부터는 다 ‘하강’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 품에 안겨 아버지와 장난스런 대화들을 나누곤 했다. 가끔 아버지의 늘어진 목살을 잡고 만지작거리는 재미도 있었다. 왜 어른들 살은 이러지? 이런 궁금함을 갖고서. 그런데 지금 내 목살이 그래가고 있다. 그때 만지작거리던 아버지의 늘어진 목살이 내 목 가운데에서 잡히고 있는 것이다. 시간 계산을 해보니 그때가 아버지 연세가 오십 줄에 접어든 때였던 것 같다. 오십은 이런 노화현상의 본론기이다. 그러니 완연히 다른 기분일 수밖에.
이 글을 쓰는 오늘, 아내가 그 오십으로 접어드는 날이다. 아내에게 쓸 생일카드도 ‘오십 년(five decades)’라고 쓰인 걸로 샀다. 애써 축하한다며 의식적으로 집은 건데 약간 후회가 된다. 굳이 그렇게까지 각인시킬 필요까진 없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아내의 얼굴을 떠올린다. 예전 같지 않은 얼굴이다. 눈가엔 주름이 피기 시작한다. 초가을 변해가는 나뭇잎 색처럼 듬성듬성 흰머리가 보인다. 항상 젊은 여인으로서만 내 곁을 지켜줄 줄 알았는데 이젠 그녀도 완전 중년이다.
카드 내용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나와 같이 산 햇수가 더 많아질 것 같소.” 맏딸이자 외딸로서 귀염 받고 잘 자랐던 아내였는데, 목사 되겠다는 내게 시집와 반평생을 고생만 하며 산 것이다. 그것도 미국까지 건너온 이민 목회자의 아내로 말이다. 다시 한 번 고마운 생각이 든다.
이런 조크를 읽은 적이 있다. ‘연령별 부부가 사는 이유’다. 20대는 서로가 신나서 살고, 30대는 서로가 한눈팔며 살고, 40대는 서로 마지못해 살고, 50대는 서로가 가여워서 살고, 60대는 서로가 필요해서 살고, 그리고 70대는 서로 고마워서 산다. 그렇다면 우리 부부는 지금 서로가 가엽고 불쌍해서 같이 살아준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아이러니는, 가장 팔팔하고 힘차게 살아가야 할 삼사십 대와 오십 대에 부부가 한눈팔거나 아니면 마지못해서, 또는 가여워서 산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면, 다들 인생 낭비 아닌가?
씁쓸한 면이 있긴 하나, 그래도 가장 좋은 건 70대다. 고마워서 사는 거다. 기독교 신앙을 간직하며 사는 것의 최고의 복은 ‘고마움’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가 너무 고맙다. 그게 너무 고마워서 목사가 되고, 목사 사모가 되고, 교회 리더십이 되고, 교회 봉사를 하고, 그리고 선교사로도 나간다.
그래서 이 고마움의 마음, 이 감사의 마음, 정말 소중한 것이다. 부부도 그래야 한다. 아내와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고마움을 항상 유지하려고 애써야 한다. 아내가 오십이 된 날, 그래서 난 아내가 정말 고맙다. 내 아내 되어준 것, 목사 사모 되어준 것, 두 아이 낳아서 잘 키워주고 좋은 엄마 되어준 것, 시부모에게 착한 며느리 되어준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 절반 가까이를 나와 살아준 것, 정말 고맙다.
가여워서 사는 오십 대? 그 나이에 부부가 같이 살아가는 이유로서는 너무 가난하다. 다들 고마워서 사는 부부들이 되었으면 한다. 특히 우리 부부와 같은 오십 대들, 다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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