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크라멘토 수도장로교회 담임 필자는 ‘문과(文科)’ 성향의 인물이다. 선천적인 건가, 후천적인 건가, 어떤 과학적인 적성 테스트에 이를 통과시켜본 적이 없었기에 그 정확성은 알 수 없는 노릇이나, 어렸을 때부터 수학이나 과학 같은 과목들 근처에 가기 싫어했던 건 분명하다. 대신, 글 쓰고, 시 쓰고, 상상하고,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르는 건 참 좋아했다. 그래선지 어렸을 때부터 자유분방한 편이었다. 구속 받는 것 역시 딱 질색이었다. 그런 점에서 주입식 위주인 한국 교육 풍토는 내겐 어울리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정해진 콘텐츠를 암기해 잘 적어내는 것, 그걸 잘하는 애를 공부 잘하는 스마트한 학생으로 대접해주는 것에 대한 은근한 불만도 있었다. 난 창의적인데 말이야, 그런 날 안 알아주는 이 사회, 문제 있는 사회다, 이러면서.
가끔 난, 그래서 그때 내가 미국 왔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지구상에 있는 나라지만 미국은 그때부터도 많이 달랐다. 한국은 집단이 우선적인 나라지만 미국은 개인이 더 중요하다. 한국은 나 개인마저도 집단의 일부로 이해되지만, 미국은 나를 중심으로 집단을 이해한다. 한국은 “이게 맞습니까?”라고 묻지만, 미국은 “너의 생각은 무엇이냐?”라고 묻는다. 그래서 개인의 창의적 상상력을 최고의 교육적 가치로 여기는 미국이 내게 더 맞았을 것 같다.
서양인들이 이토록 더 개인적인 건 20세기를 강타했던 실존주의적 사상과 깊이 맞물려있다. 실존주의는 한 마디로 텍스트를 무시하자는 운동이다. 텍스트란 우리 안에 이미 고정되어 있는 기준칙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게 싫은 거다. 텍스트의 존재가 힘을 발휘한다는 건 나의 콘텍스트(상황)가 거기에 준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이에 반발해, 아니다, 난 나대로 생각하고 싶다, 난 텍스트에 의해 조종당하고 싶지 않다, 그 텍스트도 내가 지금 느끼고 경험하고 결단하는 대로 조종하고 싶다, 이렇게 나선 것이다. 실존주의는 이런 동기에서 출발된 사상이었고, 그러하니, 이는 본질적으로 자유스러운 서양인들의 입맛에 딱 맞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도, 어려서부터 일탈을 즐기던 스필버그나 잡스 같은 인물이 다 서양에서 나온 게 아닐까?하지만 나의 경우,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다.
필자의 직업은 목사다. 목사생활만 20년 넘게 했다. 그러면서 그토록 ‘내 맘대로’이고 싶던 필자는 한 ‘강력한 텍스트’에 꽁꽁 묶여버리게 되었다. 그 강력한 텍스트란 성경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신앙이다. 신앙은 내가 느낀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또 나 기분 좋을 대로 따라가면 안 되는 영역이다. 하나님의 텍스트에 나의 콘텍스트가 묶이고 조절당하는 게 신앙이다. 그 역 조절이 부담이며 지겨운 일이 아닌, 새롭고 신명나며 감사할 일이 된 것이다. 이처럼, 기독 신앙의 현장은 이런 대단한 역설이 발생하는 곳이다. 사실 자유분방한 자기중심의 실존주의적 라이프스타일은 이젠 서양인들만의 몫은 아니다.
이 면에선 이미 국경이 없어졌다. 통신의 발달 때문에 동양이든 서양이든 한 마디로 ‘저 좋을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대세가 되었다. 덩달아 신앙과 교회도 그 대세를 따라간다. 현대인은 어떤 ‘기준’을 들이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들에게 기준은 언제든지 내 입맛에 따라 조절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세대에서는 특별히 이게 더 심해질 태세다. 이를 지켜보는 목사로서 갖는 염려는, 그렇다면 앞으로 교회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에 있다. 사사기라는 책(성경의 일부)이 있다. 이스라엘 역사 중 한 암흑시대를 다룬 책인데, 거기에서 그 시대의 암흑상을 종합적으로 이렇게 진단한다. “그때에,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 시대와 얼마나 닮았는지 모른다. 자신의 소견(견해)을 하나님의 텍스트(기준)에 맞추는 일, 이게 신앙임을 잊지 말자. 이 원칙은 세월이 바뀌어도 결코 변치 않는 것이며, 또 변해서도 안 되는 중요한 원칙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