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8월4일 한 방송사의 생방송 9시 뉴스시간에 괴한이 난입했다. 자신을 가리봉 1동에 사는 소창영이라고 밝혔던 괴한은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다. 여러분!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있다”는 알 수 없는 소리를 외치다 19초 만에 강제로 끌려나갔다. 이 사건은 한 정신병자의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지만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희대의 사건으로 기억된다.
25년이 흘러 2013년 6월9일. 이번에는 영국의 가디언지 ‘세상 모든 컴퓨터에 도청장치가 들어있다’에 실린 한 남성의 폭로가 세상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전직 CIA요원 에드워드 스노덴은 ‘귓속에 도청장치’라는 가리봉동 주민 소창영의 25년전 해프닝과는 차원이 달랐다.
스노덴은 미 국가안보국(NSA)이 ‘프리즘’이라는 전자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의 온갖 전화통화와 인터넷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구글과 페이스북 등 9개 IT 기업의 서버를 통해 무차별적인 민간인 사찰을 벌여왔다고 폭로한 것이다.
개인들의 소소한 일상이 매시간 공개되는 페이스북과 인터넷 검색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글 서버의 감시와 정보 수집만으로도 이미 미 정보당국은 세상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 행동거지 뿐 아니라 머릿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세상 모든 컴퓨터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 소름끼치는 현실이 스노덴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국가안보국이 그동안 국경을 가리지 않고 전 세계에서 수집한 정보가 130억 건에 달하고 미국 내 자국민에게서 수집한 정보만도 29억 건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 스노덴의 말처럼 우리는 “내 행동과 말 모두가 기록되는 세상”에 살고 있었던 셈이다. 정보당국이 개인의 행동과 말을 수집하는 데 그쳤을까. 이를 가공하고 분석해 ‘나도 모르는 나 자신’을 속속들이 내려다보고 있지 않았을까.
초법적인 ‘빅브라더’ 미국의 모습이 드러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음모론에만 등장했던 초국적인 정보통신감시망 ‘에셜론’이 1998년 던켄 캠벨의 폭로로 실체가 밝혀지면서 미국이 구축해 온 전 지구적 차원의 정보통신 감시체계 일부가 드러난 적이 있다.
미 정보당국의 전 지구적 감시체계의 위력을 보여준 할리웃 영화도 있었다. 우연찮게 1998년 개봉된 ‘국가의 적(Enemy of the State)’이란 영화에는 129개 인공위성으로 작동하는 감시체계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며 쫒기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주인공은 이렇게 탄식한다. “프라이버시는 사라졌다. 안전한 것은 머릿속에 있는 것뿐”이라고.
15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머릿속마저 안전하지 않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귓속뿐 아니라 몸속 장기 구석구석에 수 없이 많은 감시장치를 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하는 행동과 말 모두가 기록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지도 그런 세상을 지지하고 싶지도 않다.” 세기의 폭로를 앞두고 두려움에 온 몸을 떨었을 에드워드 스노덴의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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