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蜂)을 벌로 보다가 벌(罰)을 받는다는 소리가 있다. 9월 13일 새벽기도에 다녀오는 길에 일어난 사건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거의 5시30분이면 아내와 나란히 샛별을 보며 새벽기도에 다녀오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늘 조금 빨리 가려고 물 없는 작은 도랑을 건너, 한 사람이 겨우 거닐 수 있는 아주 좁은 소로를 지나다니곤 한다. 이날도 예삿날과 같이 그 길을 지나가려고 하니 평일에 없던 삭정이 나뭇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어 통행에 불편을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둠에 더듬거리며 기다시피 다니는 길인데 조금 성가시게 했다.
동쪽 하늘이 훤히 동틀 무렵 새벽기도를 마치고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거치적거리던 나뭇가지들을 아내와 같이 주섬주섬 한쪽 편에 치워놓았다. 그런데 길과는 관계가 없는 바로 옆에 약 두 뼘 둘레의 2미터 남직한 썩은 나뭇가지가 있어 그것을 마저 치우려고 집어 드는 순간 왼쪽 손등에 따끔, 금방 피부에 아픈 자극이 왔다. 벌에 쏘였다는 육감이 들었다.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오른 손과 오른 발목 복숭아 뼈를 쏘아대며 바짓가랑이에도 몇 마리 붙어서 사력을 다해 공격하고 있었다. 간신히 벌들을 퇴치하고 나니 그 때서야 벌에 쏘인 곳이 아리고, 쑤시며 벌겋게 부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벌에 쏘이는 것이 페니실린 1병 맞는 것보다 낫다는 말을 들은 생각이 났다. 요즘 비싼 돈을 주고 봉침(蜂針)을 맞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아는 터라 내심 속셈으로, 오늘 새벽기도에 다녀 온 것을 가상히 여겨 하나님이 특별히 벌침을 선물로 주셨구나 하고 마음속으로 기분 좋게 생각하며 감사했다. 오히려 조금 지나면 괜찮겠지 하며 침 맞은 것을 은근히 흐뭇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랬는데 그게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벌겋게 성내며 아파서 견딜 수 없었다. 놀란 아내는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시니어센터에 맡은 시간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시니어센터로 먼저 갔다. 정말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래도 억지로 1시간 강의를 하고 되돌아 올라오다가 병원에 들렀다. 닥터가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고 엄포를 놓았다. 해독약을 뿌리고 바르며 1주일 분 약을 처방 받아가지고 병원을 나왔다. 한국에서는 성묘를 가서 벌초하다가 벌에 쐬어 죽은 사람이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벌침을 맞은 것을 은근히 좋아하던 생각이 슬그머니 괘씸하고 분한 생각으로 변했다. 어떻게 이 벌들에 복수할까 궁리를 하면서 벌에 쏘인 현장에 가서 벌 굴을 찾아냈다. 아무 사고도 없었다는 듯 썩은 나무 그루터기 속을 벌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불을 지르고 약품을 살포하여 죽일 계획을 수립하고 D데이를 정했다. 쏘인 데가 아파올 수록 복수의 칼날을 세웠다.
이 이야기를 농장을 하는 교우에게 전화로 말했더니 오히려 내 경솔을 탓하면서 절대 벌을 죽이지 말라고 했다. 벌은 절대 선제공격을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벌은 외부의 침공을 당할 때 정당방위로 공격한다는 것이라고 하면서 보지 않았어도 내가 벌이나 벌집을 건드렸기 때문에 벌의 역습을 받았다며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유추해 보았다. 아! 사실이었다. 내가 치우려던 썩은 나무 밑동에 벌집이 있었는데 내가 미처 보지 못하고 그만 벌집을 건드렸던 것이었다. 하마터면 벌에 쏘인 홧김에 내 잘못은 생각지 않고, 내 급한 성질이 숱한 벌의 생명을 일거에 말살할 뻔했다.
아찔했다. 나는 이번 일을 통해서 모든 일에 원인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 앞으론 언행심사를 조신하고 심층하게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벌을 통해서 좋은 교훈을 받은 격이다.
어쨌든지 돈 안들이고 몸에 좋다는 벌침을 새벽기도 선물로 받은 것을 감사하며 1주일 동안 고통을 감내했다.
이경주
워싱턴 문인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