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필자보다 스무 살 정도 아래인 30대 중반의 이 친구는 아직 신혼인데 부인은 피아니스트이다. 아직 애가 없어 알콩달콩 소꿉장난하듯 재밌게 산다. 부부가 얼굴을 마주하고 하기 힘든 얘기는 문자 메시지로 보내는 신세대 부부다.
이 친구는 일도 열심히 하지만 워낙 부지런해 집의 뜰 일도 잘한다. 몇 주 전 토요일에는 그 동안 미루어왔던 제법 시간이 걸리는 큰 작업을 아침 이른 시간부터 하기로 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 부인은 연주 실력도 좋지만 가르치기도 잘해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이 제법 많다. 개인 스튜디오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는 경우에 많이 그러하듯 이 부인도 토요일에 제법 많은 레슨이 있다.
그런데 뜰 일을 하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던 토요일 바로 전날 부인이 이 친구에게 다음날 피아노 레슨 스케줄을 모두 취소했다고 했단다. 물론 레슨이란 가끔 취소나 재스케줄도 되는 것이기에 이 친구는 부인의 말에 별로 신경 안 쓰고 예정대로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뜰 일을 시작했단다.
아침 9시경 이미 구슬땀이 이마에 흐르고 있을 때 부인이 일어나 뜰로 나오더니 “어, 열심히 일하네” 하더라는 것이다. 이 친구는 잠깐 아침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그냥 다시 뜰 일을 계속 했단다. 다시 부인이 밖으로 나온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 쯤 후인 11시경이었단다. 그러더니 ‘어, 아직도 하고 있네’ 하더라는 것이었다. 물론, 이 친구는 오랫동안 벼르 왔던 일이기에 당연히 하루 종일 열심히 해도 모자랄 것이다 생각하고 계속 뜰 일을 했다고 한다. 그 후 점심시간 때는 부인이 차려준 점심도 먹고 일을 계속한 후 집안으로 드디어 들어왔을 때는 이미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때서야 별안간 집안의 분위기가 별로 안 좋은 것을 느꼈단다. 이 친구가 이유를 짐작도 못하고 있던 그 때, 집에서 키우는 개가 주인들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싶었는지 조용히 꼬리를 내린 채 자리를 피해 밖으로 나가더라는 것이었다.
이 친구는 다음날 직장에 출근해 동료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며 토요일에 있었던 얘기를 나누었다. 그랬더니 여성 직장 동료들은 한결같이 레슨 스케줄 취소 얘기를 듣자마자 곧 바로 ‘아, 토요일날 날씨가 좋았으니 어디 놀러 나가자라는 뜻이었는데” 하더라는 것이었다. 부인의 이 깊은 뜻을 이 신세대의 젊은 친구도 바로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왜 그런 얘기를 그냥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이 친구의 후회 가득한 푸념이 뒤따랐다.
그런데 우습지만 여기까지 듣고 있었던 필자를 포함한 중년 남자들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부인이 레슨을 모두 취소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힘든 뜰 일을 남편 혼자 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 분명히 도와주기위해 그랬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정말 동상이몽이 따로 없다.
그리고 레슨 취소의 진정한 이유를 알게 된 그 순간 누군가의 입에서인가 탄식처럼 튀어나온 말이 “우린 개보다 못한 남편인가봐”였다. 그래 맞다, 개도 파악했던 분위기를 파악 못한 우리 남편들은 개보다 못한 게 분명하다.
필자도 아내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헛것을 짚어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사실 30년 가까이 변호사 업무를 보아오고 16년째 공직생활을 하면 상대의 의중을 웬만한 것은 말을 안 해도 그냥 딱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아내의 의중은 너무 깊은 곳에서 나와서 그런지 파악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것이 필경 필자만의 일은 결코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 애써 위안해 본다. 그리고 이렇게 눈치가 개보다도 못한 남편들을 위해서 우리 현명한 부인들께서 앞으로는 가능한 좀 더 직설적이고 쉽게 눈높이를 낮추어 의사표현을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이 칼럼을 통해 간청해본다. 남자들이란 족속이 워낙 태어난 게 이렇게 우둔한 걸 어찌하겠나. 부인들께서 하해와 같은 깊은 아량으로 보듬어 주셔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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