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말없이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준다. 겨울 내내 얼어붙었던 앙상한 나무 가지에 물이 오르기 시작하고 아지랑이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며 대지에 훈훈한 김이 서리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새싹이 돋아나고 만물이 활동을 개시한다.
바로 이런 계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속죄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신다. 그래서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웠다면 그것이 곧 교회이다. 그렇다 부활은 교회의 기초이며 이 부활의 터 위에 기독교는 세워졌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이다.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요, 구원의 기본 요소이다. 부활이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며 부활이 없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니다. `인생은 죽음을 향한 존재,’ `죽음에 포위된 인생’이라 하였으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믿는 자에게 `죽으나 산다’는 부활의 길을 열어 놓으신 참으로 놀라운 희망이 부활의 메시지다.
부활 신앙은 우리를 영원한 시간 속에 살게 하므로 유한한 인생이 지상에서 겪는 역경과 부조리와 고난을 능히 극복하게 한다. 그래서 부활 신앙을 소유한 무리들은 그 어떤 현세적 어려움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다만 부활에로의 과정일 뿐이다. 이제 우리의 생애는 바르게 평가 받으며 부활하게 될 것이다.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나타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부활절을 맞으며 숙연해지기도 한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실의에 빠졌던 제자들이 절망에서 소생되어 부활에 축제를 벌렸다”고 하였다. 그렇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에 대한 확인이다. 진리는 결코 죽지 않으며, 불의에 패배하지도 않았고, 사랑은 미움을 이기었다. 그래서 희생하며 사명을 감당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모두에게 부활은 희망이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과 환경이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도처에 일어나는 상상을 초월하는 천재지변, 경제의 악순환, 데모, 테러, 전쟁, 질병의 위험에 직면하여 사람들이 비관적이고 절망하며 체념한다. 어떤 이는 오래도록 지켜온 신념조차 저버리고 양심에 지워지지 않을 흠을 남기기도 한다.
이런 때 필요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인가, 부활의 소망이다. 부활 신앙이다. 지금도 은혜로 만나 주시는 하나님, 그분의 약속 안에 희망이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초대교회 사람들처럼 이제 다가올 오순절의 체험을 안고 담대하게 증인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부활의 아침에 빈 무덤에서 비쳐왔던 그 빛이 우리 마음을 비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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