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무게. 인간이 숨을 거두고 나면 몸무게가 정확히 21그램 가벼워진다는 영화가 있다. 21그램이라는 숫자는 1901년 의사 던컨 맥두걸이 질량 보존의 법칙에 의거하여 찾아낸 결과다. 인간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몸무게. 그걸 영혼의 무게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21그램이면 얼마나 될까?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음식 재료로서 소금이 있다. 21그램의 소금을 손바닥에 놓으면 딱 한줌이 된다. 아주 하찮은 무게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토록 하찮은 무게가 오늘, 우리를 지탱시켜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즈음 미디어 뉴스가 어수선하다. 뉴질랜드 지진에 이어 일본이 연이은 강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 채널을 켤 때마다 사망자와 실종자 수를 알리 숫자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쓰나미의 공격으로 원전 사고까지 잇따른다. 방사선 유출로 21그램의 놀라고 겁먹은 영혼들 틈에서 우리 또한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단 21그램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두려움!
80년 대 중반쯤이었다. 알래스카 바다 심연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몇 시간 후면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와 살고 있던 섬을 덮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재해 대책 본부에서는 주민들을 긴급 대피시키기에 바빴다. 하지만, 쓰나미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긴가민가했다.
그리고 파도가 제아무리 높다 할지라도 2층은 안전하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2층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1층 사람들에게 2층으로 대피하라는 자비의 손길까지 내밀었다.
재해 대책 본부에서는 헬기로 온 동네 하늘을 헤집고 다니면서 스피커를 통해 대피를 호소했다. 그러나 도통 말을 들어먹지 않은 주민들 때문에 급기야 대책 본부에서 사람이 직접 나섰다.
바다에 대한 지식이 조금 남달랐던 남편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기민한 동작을 취했다. 만약 예정대로 쓰나미가 닥치면, 이 주변은 초토화될 거라며 음식과 물 그리고 소지품 등을 비닐로 꽁꽁 싸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렸다. 아직 풋풋한 새댁이었던 난, 설마! 하는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갓 백일이 지난 딸은 베이비용 흔들의자에 누워서 뭘 알고 보는지 모르고 보는지 지직거리는 텔레비전 화면을 골똘히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다시는 고국에 계시는 부모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수화기를 들었다. 구체적인 설명을 드릴 수가 없어 그저 목소리 한번 듣고 싶었노라 하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기의 비상식품과 용품이 가득 든 가방을 둘러메고 주변에서 가장 높은 뒷산을 향해 올랐다.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동네는 마치 21그램의 영혼이 떠난 몸과도 같이 싸늘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날, 불행 중 다행으로 쓰나미는 오다가 방향을 틀었다. 밤늦게 산에서 내려온 후, 쓰나미의 성난 모습을 TV 화면을 통해 보면서 난 오금을 펴지 못한 채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런 쓰나미에 대한 기억을 안고 있었기에 21그램의 영혼들이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는 속보가 전해지는 뉴스에서 쉽사리 마음을 거둘 수가 없었다.
오늘 당신과 나, 21그램과 함께 있다. 무얼 더 바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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