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일에 맞춰 사망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사람도 많지 않다. 일본 대학에서 수학하다 징용으로 끌려가 광산 노동자로 생활했는가 하면 해방 후 김일성 대를 거쳐 모스크바 유학을 다녀온 후에는 주체사상을 창립, 북한 실세로 살기도 했다. 김일성의 총애를 받으며 김정일 지도교사 노릇까지 한 그가 1997년에는 느닷없이 망명을 감행했다. 그 결과 아내와 자식들은 자살하고 그와 가까웠던 인사 2,000여명이 숙청당했다고 한다.
개인적 비극을 감수하고 온 한국이지만 앞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의 망명과 때맞춰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을 펴면서 그의 활동은 극도로 제한됐고 노무현 정부 때는 안가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한 때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게 한 측근의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가 그에게 최고 훈장인 무궁화장을 추서하고 그를 국립 현충원에 묻기로 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정세균 민주당 최고위원은 훈장은 “국민 복지향상과 국가발전에 공적이 뚜렷한 자에게 수여한다고 돼 있는데 무궁화장을 받을 공적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현충원 안장도 “주체사상의 이론적 기초를 닦았고 오늘날 북한 현실에 대해 책임이 있으며 남한에 와서 주체사상을 부정한 바가 없다”고 반대 의사를 밝혔다. 과연 주체사상 때문에 상을 줘도 안 되고 현충원에 묻을 수도 없다는 그의 말은 진심일까. 혹 햇볕 정책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였기 때문은 아닐까.
13일 현재까지 그의 빈소에 한나라당 지도부는 대거 참석한 반면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 등 관계자들은 거의 오지 않았다. 이를 보면서 떠오르는 것이 1994년 김일성 사망과 2004년 그의 10주기 행사를 놓고 벌어진 조문 파동이다. 이 때 친북 좌파들은 김일성 조문은 이념과 관계없이 민족 화합 차원에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던 이들이 황장엽 빈소에 조문 오지 않았다는 것은 ‘민족 화합’ 운운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앞서 며칠 전 민노당 대표라는 인간은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3대 세습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강변했다. 그토록 외교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이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치어죽었을 때나 미국 쇠고기가 수입된다고 하자 어째서 그리 열렬히 반미 시위를 벌였던가. 그 논리대로라면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걱정해 독도 영유권이나 종군 위안부 문제도 거론하지 않는 것이 옳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을 궁색히 내놓는 꼴이 심히 보기 안쓰럽다.
지금 한국에서는 양심도 논리도 없이 맹목적으로 김정일을 추종하는 가짜 진보와 손호철, 진중권, 홍세화 등 일말의 양심이 살아 있는 진짜 진보와의 싸움이 한창이다. 진짜 진보들은 3대 세습에 침묵하는 가짜 진보를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진짜 진보가 가짜 진보에 이기는 날, 그 날이 속히 오길 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