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실종 아미리, 워싱턴 파키스탄 대사관 나타나 “이란 송환”요구
한때 미국에 망명설 보도
미정부 “자유의사 체류”
1년여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실종됐다가 미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이란의 핵 물리학자가 돌연 파키스탄 대사관에 나타나 이란으로 보내달라고 촉구, 그에 대한 미국의 납치설을 둘러싼 진실게임이 격화되고 있다.
파키스탄 외부무는 13일 샤흐람 아미리(32)가 지난 12일 밤 워싱턴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의 `이란 구역’에 도착한 뒤 이란으로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미리가 파키스탄 대사관에 도착한 정확한 경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테헤란 말렉 아시타르 대학에서 근무하던 핵 물리학자 아미리는 지난해 5월31일 성지순례차 다른 일행과 함께 사우디를 방문했지만 3일 후 메디나의 호텔에서 외출한 뒤 실종됐다.
그의 행방이 6개월이 넘도록 묘연했던 가운데 이란 외무부는 지난해 12월 “여러 정황을 고려할 때 미국 정보당국이 아미리를 납치했으며 사우디 정보당국도 미국의 납치행위를 도왔다”며 미국의 납치설을 최초로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미국정부는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13일 미국을 방문중인 이라크 외무장관과의 국무부 인터뷰 도중 관련 질문을 받고 “아미리는 자유의사에 따라 미국에 있었으며 그의 의사에 따라 떠날 수 있다”고 밝혔다. 힐러리 장관은 또 “아미리는 하루 전날 이란으로 떠나게 되어 있었으나 제3국을 통해 이란으로 돌아가는 여행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면서 “그의 의지에 따라 갈수 있는 자유인”이라고 비공식 해명했다.
지난 3월 미국의 ABC방송은 아미리가 미국에 망명했고, 이란의 비밀 핵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고 중앙정보국(CIA)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도 아미리는 납치된 게 아니라 CIA 주도의 치밀한 국제 공작을 통해 서방에 망명한 것이라고 지난 4월 보도했다.
서방 언론의 이 같은 보도는 이란 핵 과학자의 실종사건에 CIA가 개입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들이었다.
지난달에는 자신을 아미리라고 주장한 남성의 발언이 담긴 영상들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납치설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증폭됐다.
지난달 8일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에서 아미리라고 주장한 한 남성은 “사우디에서 성지순례 중 미국 요원들에 의해 납치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 다른 영상에서는 “더 많은 연구활동을 위한 박사취득차 미국에 온 것이며 자유롭고 안전한 미국에서 생활하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달 29일 이란 국영TV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아미리라고 주장한 남성은 “두 번째 영상은 전적으로 날조된 것이며, 나는 이후 미 정보당국의 감시를 피해 탈출했다”고 밝혔다.
이란 파르스통신은 “이란 언론 보도와 정보당국의 활발한 활동에 압박을 받아 미국 정부는 결국 아미리의 신병을 대사관에 인계할 수 밖에 없었다”며 미국 요원들이 아미리의 신병을 파키스탄 대사관에 인계했다고 보도했다.
아미리는 13일 이란 국영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내 발언을 담은 영상들이 인터넷에서 공개되자 미국이 이번 게임의 패배자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다”며 “미국은 이번 사건을 확대하지 않기 위해 나를 조용히 이란으로 돌려보내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BBC 방송은 아미리가 본국 송환을 강력하게 요구함으로써, 미국 납치설을 제기해 왔던 이란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작용할 수 있게 됐으며 미 정보당국에는 크나큰 당혹감을 안겨 줬다고 전했다.
행방불명됐던 이란 과학자 샤흐람 아미리가 지난 6월7일 유투브 동영상에 등장한 모습.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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